처음 집담보 대출을 다 갚은 건 4년 전이었다. 그런데 '대출 제로'의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남편이 새 차를 사자고 하는 것이다. 당시 우리가 타던 차는 신혼 때 구입한 '투싼'이었는데, 워낙 관리를 안하고 탄지라, 상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편) 솔직히 아이들 태우고 다니다가 고속도로에서 멈춰 설까봐 걱정이야.
다른 차들이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 이제 빚 다갚았는데...무슨 차를 사, 조금만 더 타면 안돼?
감가상각이 심한 사치재의 대표격인 새 차를 뽑자고 하다니...이제 막 재테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계속 보채는 남편을 보다못한 나는 결국 한 인터넷 카페에 이런 사정을 말하며, 차를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견을 구했다. 다음 날 몇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그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투싼 타고 강남가자!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투싼 타더라도 강남에 갈 수 없음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이튿날 나는 남편과 함께 새 차를 시승하러 갔다. 얼마 후 우리 집에는 다시 마이너스 ㅇ천만원의 대출이 생겼다.
올해 초 다시 '대출 제로'가 되었다. 사실 집담보 대출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대략 그만큼의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게 되었으니 대출이 없는 셈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동학농민운동, 아니 동학개미운동에 내가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의 일이다.
왜 하필 삼성전자였나?
사실 다른 주식도 있긴 있었다. 엑손모빌, 테슬라, 엔비디아, 코스맥스 등...이 중에는 2루타, 3루타가 될 뻔한 주식도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좀 더 가지고 있다가 팔았으면 돈 벌었을텐데, 주가가 오르기 무섭게 팔아버리는 나의 소심함이란! 그런데 이상하게도 삼성전자 주식만큼은 매도버튼이 눌러지지 않아 계속 모으기만 했다. 한 때 평가수익이 ㅇ천만원에 달했을 때 남편은 이익 실현을 권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1만주까지 계속 모을거야. 그리고 인삼주처럼 한 30년 푹 묵혀야지~
이랬던 나인데, 최근 파월 한마디에 요동치는 주가 흐름을 보며 마음이 자꾸 흔들리고 있다.
(남편) 빚투 그만하고 빨리 팔아. 박스피 몰라? 대출이자 엄청 올랐어.
(나) 이게 왜 빚투야? 배당금도 받고 있는데..거기에 현금 보유시 인플레이션율까지 고려하면 거의 손해 없어.
남편의 구박에 창의적인 논리로 맞대응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진작 팔아 ㅇ천만원 챙겨 놓을걸, 후회가 들었다.
그래, 장기투자는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거지.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내가 무슨 장기투자냐.
장기+가치 투자자가 되겠다던 나는 이렇게 삼성전자와 이별을 고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이 왜 약세장 바닥에서 자산을 팔아버리는지 이해하려면 미래의 기대수익 계산법을 공부할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지켜보아야 한다. - 돈의 심리학
올해 연말, 나는 결국 애증의 삼성전자를 팔고 '대출 제로'가 되어 있을까? 나의 재테크 감은 '쓸데없이 손대지 말라'고 외치고 있건만...남편은 '장기투자가 반드시 답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쨌든 주가 하락과 금리 상승이라는 상황 변화와, 불확실성, 후회 등을 이겨낼 맷집이 지금 우리에게는 없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분명한 것은, 삼성전자를 팔더라도 주식시장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꿈에도 그리던 '대출 제로'가 되고 나면, 매달 우량주와 ETF를 조금씩 적립식으로 모아가야지~ 계획하고 있다. 주식이 오를 때의 'FOMO 증후군'과 주가가 빠졌을 때의 '공포와 불안'을 최소화하는 투자법이야말로 지속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