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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아라 Sep 21. 2024

해외에서 느끼는 끔찍한 감정

무료함과 무기력에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 라는 생각에 함몰되었다. 

요즘따라 독일에서 느끼는 감정이 심상치가 않다. 

한마디로 무료함과 무기력에 빠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아무것도 하기 싫어 유튜브를 보며 누워있다. 오늘은 오후 4시까지 한국 연애 프로그램 클립을 몰아봤다. 

내 방에는 큰 창문이 있어서 바람이 날리는 나무, 전형적인 독일의 풍경들이 보인다. 

유튜브에서 눈을 떼고 그 창문을 보면 문득 "나 왜 여기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무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이곳이 독일이던 한국이던 뭐가 다를까 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한껏 치솟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독일살이를 연장했던 7월과 전혀 다른 감정상태다. 


8월은 독일 항공사 승무원에 지원했고 온라인 인터뷰 초대는 커녕 서류에서 탈락했다. 

항간의 소문으로는 루프트 한자가 올해 마지막 채용공고를 낸 것이라 비자를 해결할 시간 없어 영주권이 있는 지원자들만 뽑았다는 말이 돌았다. 

사실 최종 합격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어도 영주권 없이 독일에 체류하는 한국인이라는 신분 자체가 결격 사유였다는 생각에 서운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의문이 많이 든다. 

시청에서 아직 거주허가증을 기다리고 있기에 폴란드 여행도 취소했고 독일을 벗어날 수가 없다. 

거의 한달째 독일 불법체류자 신분인 것이다. 


이렇게 되니 조금씩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영주권은 고사하고 거주허가증 조차 없어 독일에 있는 한국인.

그러다 보니 독일에 남아있는 것이 유의미한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화장품을 사거나 생필품을 살 때 조차 번역기를 사용해야 하고 가게에서 영어로 말하는 나에게 직원은 what...? 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난 Entschuldigung. Ich spreche nicht gut Deutsch. (실례해요. 제가 독일어를 잘 못해요) 라는 말을 하고 난 뒤 영어로 상황을 설명한다. 


한 학기 교환학생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단점들이 조금씩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곳에 있으면서 영어 공부, 독일어 공부를 야무지게 해야지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을 잃어가는 나를 마주하고 있다. 독일어로 쓰여진 모든 것들은 내 머리 위에 "?"를 띄웠다. 

가게 직원들은 독일어로 친절하게 이야기 하다 못 알아듣는 내 표정을 보고는 "아 얘 외국인이지 okay then... " 이라며 언어를 바꿨다. 이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 보다 무뎌지기 보다는 조금씩 더 선명한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영어로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 조차 이전보다 우물쭈물하게 되고 입을 다무는 순간들도 늘어났다. 


이럴꺼면 나... 한국으로 돌아갔어야 하나? 

좋은 기억만 가지고 박수칠 때 떠나야 했는데,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한걸까?

영어도 독일어도 완벽하지 못 하면서 여기서 주제도 모르고 새로운 가능성을 꿈 꾼걸까? 

라는 생각으로 자존감이 바닥으로 향했다. 


과거의 경험을 빗대었을 때에도 해외 생활은 행복하기만 했고, 

이번에도 행복할 것 같아 연장한 해외 삶에서 뜻하지 않은 우울감을 마주하니 상실감은 더 컸다. 


"나는 어디에 있어도 우울한 감정을 떨쳐낼 수 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바뀌어도 나는 그 세상의 변화에 한번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였다. 


내가 독일에 한 학기 더 머물기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인간관계였다. 

친구들이 좋았고 남자친구를 사랑해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한국보다 더 솔직한 인간관계를 가지게 된 것 같았고 먼 타지에 와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 같았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남들과는 다르고 세상을 넓게 보는 사람으로 착각했구나 하는 마음이 나를 지배했다. 


방학이 되니 우정을 쌓았던 교환학생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거나 독일에서 취업을 했다. 

독일인 친구들은 저마다 인턴쉽을 하거나 자신의 친구, 가족들과 여행을 떠났다. 


나 혼자 할 일 없는 백수였다. 


영어, 독일어 공부를 해야 했지만 내가 하루종일 무엇을 하던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고 딱히 갈 곳도 없었다. 그리고 올덴부르크에는 겨울이 찾아왔고 6시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폴란드로 간 10일동안 나는 세명의 친구들에게 파자마 파티를 제안했고 우연한 불행 때문인지 

세명 모두가 당일날 약속을 취소했다. 그 순간 내가 이곳에 남고 싶었던 이유 한 가지가 문득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디아고는 나의 연락에 함께 저녁을 먹어주었고 나는 매일 매일 그와 헬스장을 빠지지 않고 갔다. 

어두운 밤에 집에 혼자 남는 것이 싫어 열심히 헬스장에 출석했다.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졸업하기 위해 동시에 한국 대학교 온라인 클래스 수강을 결정했었다. 결정을 했을 당시, 스스로 시간을 아낀 것 같아 뿌듯했는데 왠일인지 영상이 재생이 되지 않아 한달 넘게 한국 대학교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문제가 고쳐지길 바라고 있다. 


이 사소한 모든 것들이 쓰나미가 되어 한번에 나를 덮쳤다. 쓰나미는 내가 이곳에서 아무 힘 없는 외국인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한국에 있을 때와 다른 점은 이곳에서 내가 조금 더 약한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누군가 저와 같은 상태로 이 글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모든 해외살이 한국인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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