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이 느끼는 희노애락
사실 교환학생을 오면 크게 어려운 일에 부딪히지는 않는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많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과 교류, 파티, 버디 제도와 같이 교환학생이라 챙겨주는 이벤트도 많다.
더군다나 교환학생이라면 자매 학교에서 왔기 때문에 국제처에서도 금이야 옥이야 살펴주는 면이 있다.
덕분에 나는 해외생활을 부족함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다른 한국인들과 비교했을 때 외로움을 타는 편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해외생활이 즐기고 있었고 떠나기가 아쉬워 방문 학생으로 한 학기를 연장했다.
6개월로는 머물다 떠날 이방인이라는 정체성만 느끼고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더 독일의 삶이 궁금했다.
1개월 차 적응기간이다. 독일에서 압멜둥이며 주소지 등록이며 행정절차에 헤매고 있을 단계다.
2~3개월 차, 미친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파티, 모임, 여행을 다니며 내가 영어도 되고, 친화력도 있고 어딜가도 잘 살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며 최고로 행복한 단계다.
4개월 차, 나는 여기서 뭐하는 사람인지, 이렇게 놀고 먹어도 되는지 조금씩 불안한 단계다.
5개월 차, 영어가 애매하고 여기서 돈 한푼 벌지 못하는 자력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는 단계다.
정말 내 모든 교환학생의 삶과 마음의 변화를 나타내는 타임라인이다.
그리고 현재 6개월 차, 입사 지원도 해보고 스몰톡 다음 단계 영어 공부하기, 내가 있는 독일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독일어에 진심이 되어보는 단계다.
연장을 하고 나니 이제는 문화 체험을 하고 Tschüss! (굿바이라는 뜻) 하는 사람이 아닌 해외에서 살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해야 했다. 그때부터 점점 불안한 마음이 시작되었다. 해외에서 일년을 생활하기 위해 지불한 돈과 시간을 헛되이 쓰면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에서 비롯된 첫 번째 행동은 독일 항공사 지원이었다.
결론적으로 루프트 한자의 면접에 초대되지 않았다. 자격을 갖춘 지원자가 너무 많아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는 메일이었다. 지원 자격을 갖췄다고 하기엔 애매한 나였기에 기대하는 건 도둑놈 심보라는 생각도 했지만 적어도 비디오 면접까지는 내심 기대했기 때문이다.
(독일 항공사의 패용 절차는 서류 합격 - 비디오 면접 - 최종 면접순으로 진행된다.)
지원하는 과정을 겪으며 독일에서 사는 나의 위치가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어를 잘 할 수 있는가? N0.
그렇다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가? No.
해외에서 인정받을 회사 생활 이력이 있는가? No.
치열하게 독일어 공부를 하고 석사를 하며 구인구직을 하고 있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나조차도 이번 지원을 준비하면서 "이거 되면 대박인데. 몇년을 아껴서 독일에서 일할 수 있게 되는거야?"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꽁으로 얻어지길 바라는 것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남은 6개월을 어떻게 보내면 될까라는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반년간 유럽 여행 가득하고 가겠다는 교환학생의 마인드에서 나의 위치를 다시 포지셔닝하는 작업은 꽤나
고통스러웠다. 독일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존재가 되려면 부족한 나를 온전히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여전히 마주하고 있는 단계다.
외국에서 그 나라 언어를 잘 할 수 없다면 한국과 비교했을 때 행동 반경이 반토막이 된다. 알바를 구할 엄두도 안나고, 대외활동을 하거나 개인 사업도 할 수도 없다. 그저 돈 쓰는 것 말곤 할 게 없다.
5개월이 지나면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 시기라서 깨닫는 게 되는게 많아진다.
영어만 할 줄 알면 세상을 100 프로 볼 수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나와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고작 세상의 5프로였다. 무언가 나와 어울리지 않다고 느낀다면 꾸역꾸역 해야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걸 찾을 수 있다.
앞으로도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일을 해야만 할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방향이다. 그럴 때 선택지를 넓힐 수 있게 하는 것이 영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어만 되면 해외에서 잘 살 수 있다 라는 의미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가진 기술이나 경험이 같다면 영어라는 도구를 통해 활동 범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루프트 한자에 떨어져 우울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바로 율리우스와 이탈리아를 즐겁게 다녀왔다.
이후에는 "그래 이제 현실을 깨달았으니 영어랑 독일어 실력을 높여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겠지만 목표가 좀 더 구체화되었다.
루프트한자의 경우, 한국과 독일만 다니는 regional crew는 다른 나라로 비행을 갈 수 없다.
international crew로 변환하면 다시 regional crew로 돌아갈 수 없다. 즉 한번 입사하면 한국을 자주 갈 수 있는 선택지나 다양한 나라를 갈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젊을 때는 아랍 에미레이트에 다니고 싶어졌다. 세금도 안내고 여러 나라도 다니고 수영장이 딸린 집에서 무전취식을 한 뒤, 루프트 한자로 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중동은 한번도 가보지 않았고 살아볼 수 있는 기회도 승무원이 아니면 어려우니까.
한번 사는 인생, 나름대로 또 새로운 기회를 꿈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