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조건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냥 해 봐.
교환학생을 와서 비행기 객실 승무원이 되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부터 승무원은 나의 미래 직업 리스트에서 꾸준히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저 고려 직업 중 하나였다. 어릴 적 부터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면 즐거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다.
그렇게 멋져 보이는 직업들을 하나 하나 장바구니 목록에 넣듯이 수집했다. 승무원, 아나운서, 사업가, 유튜버, 마케터, 작가, 미국 부동산 셀러, 미술관 도슨스까지 다양한 희망 직업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교환학생을 오기 전에는 아나운서를 목표로 했었다. 그 이유는 카메라 앞에서 예뻐보이고 싶었고 조리있게 말하는 나를한껏 뽐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아나운서에 대해 알아볼 수록 박봉과 계약직이라는 어마무시한 두 글자가 하나로 합쳐진 예쁜 단어였다. AI 아나운서 시범 영상도 나오는 상황에서 내가 그럼에도 아나운서가 간절히 원하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대답은 아니었다.
내가 아나운서가 되면 하고 싶은 일은 딱 한가지였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봐주는 일.
요즘같은 뉴미디어 시대에 카메라에 나오고 싶어서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일차원적으로 느껴졌다.
더군다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건 유튜브에 가까웠다. 초점을 직업이 아닌 그 직업을 통해 무엇을경험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니 빠르게 생각이 정리되었다.
<승무원, 아나운서, 사업가, 유튜버, 마케터, 작가, 미국 부동산 셀러, 미술관 도슨스>
생각을 바꾸고 내가 나열한 직업들을 살펴 보니 어떤 경험을 원하고자 하는지 알게 되었다.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사람, 내가 경험한 감정을 남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첫 번째 무기는 영어라고 생각했다. 토익 900점이 아닌 네이티브 현지인의 실력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살아보니 사람들의 삶 속 다양성을 마주하는게 즐거웠다. 이야기를 할 때 언어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을 5%로만 볼 수 있다가 남은 전부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환학생을 온 후로 첫 번째 목표 직업은 객실 승무원으로 결정했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돈을 모을 수 있는 환경, 네이티브 영어의 첫 관문,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글감이 충족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늘 근무 환경이 바뀐다는게 나와 정말 잘 어울렸다.
그러던 중 한 공고를 보게 되었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복지의 끝판왕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자. 사실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 줄 몰랐다.
사실 기회가 아니라 기습이었다. 나에겐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전 루프트 한자의 채용은 초년생의 첫 직장, 승무원 경력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직장이 아니었다.
독일은 아무 경력 없는 외국인이 취직할 수 있는 취업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뮌헨- 인천 라인이 생기면서 2024년에만 채용이 열렸다가 닫혔다가 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3월의 첫 공고를 봤을 때는 좌절했다. 독일에 막 도착해 적응할 무렵, 지원조건은 독일어 A2 이상이었다.
당시 나는 처음 공부하는 독일어 A1.1 수업에 끙끙대고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하필 타이밍이 이러네. 다음 채용은 2년이나 3년정도겠구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채용 타임라인을 알고 나니 독일어에 소홀해졌다. 어차피 2년 뒤에나 올테니 기초만 해놓지 라는 생각이었다. 독일어 자격증이 루프트한자가 아닌 곳에서 유용하게 쓰일 전략은 나에게 없었다.
그렇게 독일어 보다는 영어에 초점을 맞췄고, 여행도 하고 즐겁게 교환학생 생활을 보냈다.
너무 즐겁게 보내다 보니 연장도 했다. 6개월에서 1년, 머물다 떠나는 것이 아닌 독일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8월이 되고 팔로우 해놓은 승무원 학원 계정에서 다시 한번 루프트 한자 승무원 모집 공고를 보았다.
응? 또 왜? 순간 눈을 의심했다. 마찬가지로 A2가 자격 요건이었다.
그 공고를 본 순간 내 머리를 쓰친 생각은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구나.
이리 저리 기회를 재고, 기회가 보장되면 부랴 부랴 준비를 시작하는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A1 코스를 마치고 독일어를 공부했지만 여전히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원조건은 미달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3월에는 조건을 보고 떠나 보냈을 때와 달리 한번 CV를 써 보고 Motivation도 작성해보자고 다짐했다.
난생처음 CV를 작성해본 나는 인터넷으로 CV 쓰는 법, 작성 방법을 확인했다.
미리 캠버스를 켜서 회사 상징색으로 템플릿을 만들어 나의 경력들을 나열했다.
면접 후기를 찾아보니 A2 공인 어학 성적표가 없어도 수료증이나 학교에서 들은 독일어 과정 성적표로 최종합격했다는 글을 발견했다. 그때의 기분은 짜릿했다. 조건이 미달이니 못 하겠네 하고 또 한번 넘겼으면 몰랐을테니 말이다. 합격할 수 있겠다 라는 마음이 아니라 시도해볼 수 있음에, 시도해보겠다는 결심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힘차게 CV와 Moviation을 썼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국의 이력서처럼 글자 수 제한도, 질문도 없었기 때문이다. 서류작성에 3일을 썼다. 루프트한자는 마감일도 없어서 아침마다 혹시 공고가 내려갔을까 확인했다.
그렇게 서류를 완성하고 지원을 마쳤다. 해외 취업 이력서 작성에 도가 튼 석사생 디에고, 남자친구인 교직원 율리우스에게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CV 작성법을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 어디 있겠는가.
서류를 보내고 루프트 한자 자체 영어 테스트를 마쳤다. 등급은 low - middle - high 중 세가지 영역 전부 middle 이 나왔다.
서류 지원을 하고 욕심이 과하게 생겼다. 모든 생각이 루프트한자취업, 예상 질문과 답변 외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23살에 첫 직장이 루프트한자라면 마치 인생이 성공한 기분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영어 실력이 합격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현재와 꿈의 괴리감을 느꼈다. 적어도 지금 이 꿈을 실현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혹시라는 마음도 있었다.
"서비스에 불만을 가진 손님, 이 손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을까"
"비행 중 안전 사고가 발생.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하고 손님들을 안심시킬 수 있을까"
지금 내 대답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번 해보자.
서류를 보낸 후 오타를 발견했다. 나는 이메일을 보내 고칠 수 있냐고 여쭤봤다. 다시 보내달라는 답변을 받았고 담당 부서에게 보냈으니 걱정말라는 답장까지 보내주는 루프트한자. 참 이러니 독일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독일의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경험상 뭐랄까. 한국인의 시선에서 독일 분위기는 따뜻하다. 기회와 시간을 주고 해내지 못하면 가차 없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기회가 감사해서라도 어떻게든 할 것이다 라는 마음가짐이 생긴다. 6개월간 이곳에 살면서 느낀 독일의 이미지는 다정한 FM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