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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아라 Sep 30. 2024

시간이 많아서 너무 우울해요.

의지는 약해지고 새로운 세상이 문득 무서워진 나를 독일에서 만났다. 

지난번 독일에서 우울에 빠진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봤다. 

글을 쓰고 나서 지금이 독일 생활의 첫번째 위기라고 생각했다. 이 마음가짐으로는 주말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아 율리우스와 주말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여기와서 가장 즐거웠던 게 무엇인지 되짚어 보았다. 바로 "놀이공원"이 었다. 

한국에서는 롯데월드, 에버랜드를 수십번씩 갔었기에 동선이며 놀이기구 종류까지도 꿰뚫고 있는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간 에버랜드가 재미없다고 느꼈을 때, 나이가 들었나... 싶었다. 

그런데 유럽 놀이공원에 오니 모든게 새롭고 동심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아, 그동안 놀이공원이 재미없었던 게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익숙해져서였구나. 한번도 가지 않은 새로운 놀이공원에서 가슴이 다시 뛰었다. 


스스로 우울함 극복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독일 놀이공원과 실내 스키장을 1박2일로 다녀왔다. 

저녁이 되어 노을이 지고 할로윈 음악이 나오는 놀이공원 거닐 때, 이곳에 있는 내 시간이 다시 한번 소중하다고 깨달았다. 


그동안 느꼈던 우울감은 잠시 종적을 감췄고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새로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틀간의 짧은 여행으로 모든 복잡한 감정이 치유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여행을 마치고 월요일부터 긍정 에너지를 뿜뿜해보자고 다짐했다. 

평일도 주말과 다를 바 없이 해야할 일이 없는 나.

하루종일 휴대폰을 하던지 도서관에 가던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상황에서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의지" 하나뿐이었다. 


해야 할일 일부터 해보기로 다짐했다. 조금 늦게 도서관에 가더라도 집을 나가는게 우선이었다. 


수업 리포트 제출을 위해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 미디어에서 보이는 유럽인의 모습을 관찰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조사를 하며 알게 된 것들이 흥미로웠고 마침내 보고서를 마무리 했다. 

마음이 훨씬 가볍고 내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오늘은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잘했어 윤경아!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감정에 영향받지 않고, 관계에 영향받지 않기란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독일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해외로 가고 싶어 독일에 왔고 새로운 사람들과 미친듯이 행복했던 시간을 넘어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한국어로 말해본지 몇달은 되었고 내 영어 실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이제 고갈되어 혼자 유튜브를 보는게 가장 마음이 편했다. 


유튜브를 보며 우울한 시간을 떼우고 있는 내 삶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었다. 



독일에 있던 한국에 있던 내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가짐과 내 의지다. 


고등학생 영어 과외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생각난다. 

"너는 참 억지로 시키면 잘해. 여유로울 때 하라 하면 절대 안 하고 움켜지고 닦달하면 하면 참 잘해" 


누군가 날 움켜쥐고 있으면 잡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 갈 길을 잃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은 나약한 사람인걸 인정했다. 


스스로의 실행력을 잃었다는 건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하라는 대로 하면 마음이 편했고 언제나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을 따라가며 목표를 달성했고 사람들의 말에 수긍했다. 그러나 막상 이룬 결과가 내 기대와 다르면 묘하게 분노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그랬다. 나는 사람들에게 의존했고 하라는 대로 완벽히 수행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들으면 바로 아는 대학교 가기"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교는 내 기대에 미치지 않았고 종종 그런 현실에서 불쾌함을 느꼈다. 


아니 뭐야. 하라는대로 했는데 생각보다 별로잖아. 

이런 생각이 들때면 묘한 배신감이 들기도 하고 결국 내가 의존적이라 하라는 대로만 했으니까 내 잘못이구나 했다.  


독일에서 우울해진 근본적인 이유는 내 시간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고, 관여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날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독일에 와서 이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If you want. 


교수님이 이야기 할 때면 아 이거 해야하는구나 하고 한 단어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초 집중해서 듣고 있으면 주로 마지막 말은 If you want, 니가 원하면 해.  


If you want 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늘 친구들, 교수님께 이게 맞아? 이렇게 하면 돼? 안 해도 되는거야?를 자주 물었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은 존재하지 않고 하고 싶으면 하는 일만 남은 이곳에서 난 시간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 


언어공부 해야지. 지금 내 수준에서 해야할 일은 정말 많지만 아무도 나를 움켜잡지 않는 이곳에서 의지를 만들어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면서 타지생활이라는 어두운 감정들을 만났다. 


나는 교환학생을 와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걱정거리가 있었다. 

아, 이렇게 즐기기만 하면 한국에 갔을 때 도태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가장 잘 아는 것. 열심히와 열정. 


이곳에 와서 한국은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해? 라는 마음과 동시에 난 한국인인데 이곳에서 뭐하고 있지? 싶은 복합적인 감정이 자주 들었다. 


결국 우울감의 이유는 의지는 약해지고 새로운 세상이 문득 무서워진 나를 마주 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마주했으니 되었다. 예전처럼 다시 걸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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