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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아라 May 22. 2024

교환학생이 연애를 할 수 있어?

교환학생 생활 중 외국인 남자친구가 생기다. 

4월, 독일에서의 학기가 시작되었다. 


3월에 도착하여 한달 간 독일어 코스를 수강했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 전공에 맞는 수업 스케쥴을 짜고 

두근거리는 새 학기를 기다렸다. 막상 학기가 시작되니 교환학생들끼리 모여 매일 독일어 수업을 듣고 함께 피크닉을 하던 순간들이 그리워졌다. 친구들은 각자 자신의 전공 수업에 맞춰 흩어졌고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한 가지. 

나는 독일어 A1 첫 단계를 통과하지 못했다. 

기말고사 기간, 나는 허리를 다쳐 며칠 간 수업에 참석할 수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기말고사 시험날 

출석 했으나 평소에도 간신히 수업을 따라갔던 나에게 기말고사 시험지는 말 그대로 

검은 것은 글씨, 흰 것은 도화지일뿐이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보다는 지금 수업을 함께 들었던 친구들과 개강 후에 다른 레벨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서글펐다. 


개강을 준비하며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재수강 vs 독일어 수업 안 듣기 


독일어 수업은 다른 수업과 다르게 출석율과 PASS/FAIL 기준이 엄격해 개강 후에는 독일어 수업을 듣지 않기로 결심한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처음이라 어려웠던거지 두 번 들으면 쉽지 않겠어? 


나는 고민 끝에 같은 레벨 수업을 재수강하기로 결심했다. 내심 새로운 교환학생 친구들을 사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수업 첫 날, 실망했다. 


같은 스케줄로 움직이고 매일 얼굴을 보았던 3월의 독일어 반 친구들과는 다르게 4월 반은 한 주에 두 번꼴로 만나고 이후 다른 수업을 듣다보니 이전처럼 끈끈하게 지내기는 불가능했다. 




수업을 들으며 눈에 띄는 한 친구가 생겼다. 하얀 얼굴에 도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남자였다. 

수업 중에도 늘 과묵한 친구였어서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이름도 알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먼저 다가가 신나게 말을 걸었을테지만 나는 여전히 3월 반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새로운 사람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에는 지쳐있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그 친구의 모습은 얼음왕자 그 자체였다. 


그렇게 몇 번 수업을 듣다보니 내가 첫 인상으로 호감이라고 느꼈던 일본인 친구 코노스케와 얼음왕자 친구가 함께 어울려 다니는게 보였다. 어느 날, 마침 코노스케의 옆자리가 비어있어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우리는 이미 환영식 주간에 짧게 만난 적이 있었기에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나는 필통에 있던 딸기 사탕을 코노스케에게 주었고 마침 하나가 더 있던터라 옆에 있던 얼음왕자 친구에게도 건네주었다. 차갑게 느껴졌던 그 친구가 사탕을 건네 받으며 수줍게 웃었다. 예상 밖의 귀여운 웃음에 나는 그 친구의 이름을 물었다. 


율리우스. 폴란드에서 왔다며 자신을 소개했고 수업이 끝나고 율리우스는 코노스케와 함께 멘자를(학생식당)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셋이서 식당에서 밥을 다 먹고도 한 시간을 앉아서 대화했다.

운전면허 이야기를 하며 일본은 주행 방향이 달라 국제 운전면허를 못 딴다, 독일에서 다른 나라까지 차로 쉽게 놀러갈 수 있다. 하는 이야기를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율리우스는 우리 같은 학생이 아니라 학교 국제처 직원이었다. 현재 학교 일을 하면서 독일어 수업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것 같은 이름에 학생도 아닌 그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특히 이곳에서 폴란드 친구들을 많이 사겼고 마음씨도 너무 따뜻해서 폴란드 사람이라고 하면 믿고 보는 보증 수표 같았다. 특히 내 친구 율리아와 이름이 비슷해서 나중에 다 같이 소개시켜 줘야지 하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렇게 코노스케, 율리우스. 

첫 만남에 이렇게 잘 통하는 친구들이 있다니! 예감이 좋다! 하는 마음으로 글로벌 요리 대전을 펼쳐보자며 

왓츠앱 톡방을 만들어 다음 약속을 기약했다. 


우리는 그렇게 수업이 있는 날은 매일 점심 식사를 했고 날이 갈수록 가까워졌다. 


율리우스는 자신이 먼저 요리를 해주겠다며 집에 초대해주었다. 우리와 다르게 혼자 사는게 부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에게 익숙한 LG 냉장고가 반가웠다. 기숙사에 살면서 한국 집에 있었던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가 그리웠는데 마치 한국에 있는 우리 집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은 기숙사 방에 사는 코노스케와 나는 신이 나서 방방 점프를 했다. 

율리우스는 토마토 소스를 만들고 도우를 만들어서 손으로 빚고 있었다. 피자 만들기가 취미라 도우 기계와 피자 전용 오븐이 있는 피자의 달인이었다. 


치즈를 먹지 못하는 코노스케를 위해 치즈가 빠진 피자를 구워주는 것을 보고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가까워졌다. 한국인 친구들도 불러 피크닉을 가기도 했다. 

항상 좋은 장소를 제안하고 함께 가자 하는 율리우스가 고마웠다. 


폴란드 사람답게 언제나 맥주를 들고 오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 음식과 음료를 잔뜩 챙겨오는 그에게 나는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수업 때 마다 얼굴을 보고 연락을 하다 보니 만나지 않아도 서로 무엇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스페인 여행을 떠나 일주일간 학교에 오지 못했다. 왜인지 여행을 떠나기 전날 부끄럽지만 계속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고,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게 싫다고 징징거렸다. 그때는 나도 왜 그렇게 돌직구를 날렸는지 알 수 없다. 그만큼 일주일 간 만나지 못한다는게 싫었고 급발진하는 사람이 되더라도 말하고 가는게 속 시원하다고 느꼈나 보다. 


영문을 모르는 코노스케는 의아했다. Kiara, Are you kidding me? 놀러가는 건데 그래? 하는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나는 가기 싫다며 그가 일하러 가야 하는 시간까지 붙잡고 있었다. 뒤돌아서니 적극적으로 표현을 한 것 같아서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도 일주일간 안 보니까 숨을 쥐구멍은 있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스페인에 있을 때에도 우리는 연락을 계속 이어나갔다. 율리우스는 시험 전날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직접 만든 요약 파일을 보내주었다. 시험을 마치고 일주일만에 만난 우리의 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 식사를 마치고 새로운 약속을 제안했고 나는 당연히 기분 좋게 오케이했다. 


코노스케는 그날 다른 일이 생겨 약속에 참석하지 못했고, 둘만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날 그는 내 자전거를 고쳐주었고 우리는 밤까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다음날 나는 지난번 피자를 

만들어 것에 보답하기 위해 김밥을 만들어 주었고 다시 오랜 시간 동안 대화했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나의 손이 작아서 신기하다며 손을 대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은 건지 안 잡은 건지 오묘한 상황이 되었을 때 쯤 우리는 동시에 "나는 너가 좋아" 라고 이야기 했다. 


그는 나지막하게 6월에 크로아티아를 같이 갈래? 라고 물었다. 나는 그가 이곳에서의 베스트 프렌드와 그의 여자친구. 셋이서 함께 크로아티아를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남자친구가 되고 싶은 것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사귀고 나니 차가웠던 첫인상이 무색하게 정말 애교가 많은 사람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어왔지만 부끄러움이 많아 다가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나는 율리우스와 적극적으로 친해지고자 했고 연락도 먼저 했다. 

처음 온 연락에 기뻤는데 내가 답장을 안 하자 많이 실망스러웠다는 귀여운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나는 늘 그렇듯이 독일에서 매순간 행복한 지금을 살고 있다.  지금의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을 같다. 독일어 수업을 통과할 수 없었는지, 

그럼에도 내가 다시 한번 독일어 수업을 도전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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