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가에서 몽상가로.
한순간, 소소한 나만의 생각의 세계.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던 나는
평범한 장면 속에서 작은 주제를 떠올리고,
어느새 ‘생각의 세계’로 빠져든다.
때론 가볍고 장난스럽게, 때론 깊고 무겁게.
강아지는 거울로 본인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 스스로가 강아지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나 역시 거울을 본 적 없는 한 마리의 강아지로 살아왔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난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은적이 있었는데,
감은 눈에서 보이는 우주와 같은 모습을 보며 재밌는 상상을 하곤 했다.
때로는 그 상상이 현실이라는 착각이 들어 옆자리 친구에게
지금 지구로 소행성이 다가오고 있다는 바보 같은 이야기를 전한 적도 있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포장 가능한 나이였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터무니없는 말을 순수함으로 바라봐줄 수 있는 때는 언제까지인가,
적어도 중학생은 아닐 것이다.
나의 상상을 넘어선 망상은 중학생 때도 이어졌다.
사회적으로 중2병이라고 부르는 시기가 나와 합쳐지니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발생한다.
때는 하교 후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하고 귀가하던 날이었다.
집 방향이 같은 친구와 장난치며 돌아가던 중, 이상한 망상에 빠진 순간이 있다.
앞서가던 친구를 바라보고, 다시 뒤를 돌아보니 검정 승합차 한대가 보인다.
알 수 없는 마음에 사로잡혀 친구에게 무작정 도망치자고 소리쳤다.
친구는 영문도 모른 채로 나를 따라 온 힘을 달렸고,
나의 힘이 다할 때까지 뛴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나는 그날 친구에게 승합차가 우리를 데려가려고 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했다.
물론 나는 그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시기의 나는 어떤 마음의 병이 있었을까.
이상하리만큼 지독한 상상을 많이 하며 지냈다.
더 이상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아닌, 나이에 맞지 않은 악취가 풍겼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당시의 나와 같은 중학생을 본다면, 꽤나 섬뜩하게 보였을 것만 같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바꿔 말하자면,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원하는 모습의 내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때로는 성격 좋은 외향인이 되기도 하고,
어른들 앞에서 싹싹하고 예의 바른 아들 같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품격 있고 지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고,
어리숙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장난스럽고 바보 같은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모습의 내가 잠시 될 수 있다.
이 모든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건,
저마다의 내 세상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 연재글의 주제,
나만의 귀여운 생각 세상,
사실은 처절한 나의 생각 세상,
이 세상을 정의해 준 친구가 있다.
스스로를 정의 내리지 못해 혼란스러웠던 나를,
처음으로 온전히 바라봐준 사람.
그 친구가 처음으로 나에게 써준 손 편지,
그곳에 적혀있었던 한 문장,
‘너만의 세상 속을 잘 정리했으면 해...’
나만의 세상,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가 펼쳐지던 나만의 세상.
이 세상을 남들은 알지 못할 거라는 착각과
어쩌면 남들도 나와 같을지 모른다는 기대,
이 모든 것을 깨뜨리고 나를 발가 벗긴 짧은 편지 속 한 문장.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세상을 정의해 나간다.
머릿속에 떠도는 이상과 후회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을 분류한다.
재밌는 상상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온전히 집중하며 자세히 그려내는 시간을 가진다.
감정에서 비롯된 후회와 비관들은 한데 모아 상상 속 방에 몰아넣는다.
이뤄내지 못한 나의 이상은 상상을 넘어 현실로 실현시켜 본다.
그 시절 마음의 병을 앓던 망상가에서
새로운 세상을 펼쳐내는 몽상가로 나아가기 위함.
애석하게도 나는 여전히 너의 편지 속 문장안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