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양이 같은 녀석

누군가의 관찰 일지

by 도쿄키무상

한순간, 소소한 나만의 생각의 세계.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던 나는

평범한 장면 속에서 작은 주제를 떠올리고,

어느새 ‘생각의 세계’로 빠져든다.


때론 가볍고 장난스럽게, 때론 깊고 무겁게.


나는 어쩌면 인간보다 동물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1인가구의 증가와 다양한 미디어의 영향으로 반려동물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커졌다.

동물에게 받는 힐링이 컸던 나는, 펫샵에서 1년간 매니저로 일을 했다던가, 유기견 봉사 이력도 있다.

이런 나지만 정작 살면서 반려동물을 곁에 둔적은 없었다. 이유는 다양하다.

부모님이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본가에는 흔한 강아지 한 마리가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에 부담감과 두려움이 컸다.

나는 키운 적도 없는 반려동물을 나의 부주의로 생명을 죽이는 꿈을 종종 꾸고는 한다.

그 정도로 나는 부담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반려동물 시장에서 굳건하게 왕좌를 지키던 강아지가 최근 들어서 주춤한 상태이다.

고양이 선호도가 매우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고양이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몇 년 전부터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강아지와는 다른 매력의 고양이를 데려올까 하는 고민을 매번 하고는 한다.


어떻게 글을 시작할지 모르겠어서 반려동물 시장과 여러 선호도에 대해 서론을 펼쳤지만,

이번글은 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고양이와 똑 닮은 한 사람에 대한 나의 관찰일지,

도쿄 한식당에서 일할 때 만난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시 한식당에서 일하는 유일한 일본인 바이토 친구였다.

오랜 시간 한 곳에서 장사를 해오신 사장님은 그 일대 동네 분들과 가족처럼 지내던 분이셨다.


그 친구 역시 동네주민의 딸이었고, 그렇게 한식당에 1년여간 일을 해오던 녀석이다.

그 친구는 뉴진스를 좋아하는 20살의 대학생이고, 작고 귀여우면서 목소리는 나긋나긋한 친구였다.

수줍음이 많고, 행동 또한 조심스러운 고양이 같은 녀석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지내면서 보던 그 친구의 모습에는 고양이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나는 녀석을 볼 때마다 이상한 관찰욕구가 생기고는 한다.


내성적이고 수줍은 성격이라 나서거나 말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항상 호기심 어린 눈을 가진 친구였다.

대학교에서 한국어 교양 수업을 듣는다면서 어느 정도 한글을 쓸 줄 알고,

간단한 한국어가 가능했다. 그 덕에 가게에서 들리는 한국어에 항상 관심을 가졌다 그 친구는.


나는 그 친구가 호기심을 가질 때의 표정이 귀여웠다.

온 신경과 귀는 본인이 원하는 장면에 집중하고 있지만,

애써 시선을 다른 데를 바라보며, 티 내고 싶지 않아 했다.


이상한 눈치가 있었던 나는 매번 그럴 때마다 그 친구에게 장난을 치고는 한다.


하루는 내가 김밥을 말고 있을 때였다.

어느샌가 내 옆으로 조용히 다가와 내가 김밥을 싸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녀석.

나 역시 말없이 고양이 친구를 쳐다보고 눈을 마주친다.

다시 그 녀석은 말없이 내 눈을 바라본다.


되려 당황한 나는 무엇을 그렇게 빤히 보는지 이유를 묻는다.

녀석은 조용히 웃으며 자리를 피한다.

이렇게 알 수 없고 특이하지만, 귀여운 녀석이다.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오랜만에 함께 근무하던 날이었다.

한창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가 퇴근이 다가올 때쯤,

대뜸 나에게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녀석이다.


고양이 같은 녀석에 듣는 고양이 선호도 조사라니,

그 상황에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삼키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굉장히 좋아한다고.


그러자 녀석은 나에게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바라본 화면 속에는 까만 고양이 사진으로 가득하다.

녀석이 키우는 고양이라며 고양이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고양이를 키우는구나 ‘

순간 마음속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녀석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만의 조용한 생각으로 두고 싶어,

알려주지 않았다.


흥분해서 고양이 자랑을 하는 녀석의 모습이

신나서 날뛰는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워 보이던지,

평소보다 더 에너지를 담아 장난이 치고 싶었다.

하지만 고양이처럼 숨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녀석의 기분을 맞추려 노력했다.


고양이가 신나는 날은 귀하지 않은가.


뉴진스가 일본에서 새롭게 컴백하던 어느 날.

나 역시 그녀들을 좋아하기에 매장을 뉴진스 노래로 꽉 채운 날이었다.


고양이 녀석이 출근을 하고는 바쁘게 하루가 흘러갔다.

나는 퇴근이 다고 오서야,

조용히 뉴진스 노래를 흥얼거리던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양이가 산책하듯, 매장을 천천히 걸으면서 말이다.


이날도 나는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


한편으로는 녀석의 즐거운 얼굴을 보는 날이 잦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이 공간을 잔뜩 경계하던 녀석이

어느덧 나를 집사로 인정해 준 뿌듯함이 들었다.


그런 귀여운 상상과 함께 나 또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녀석은 대학을 그만두고, 여러 바이토를 시작했다.

한식당에는 단체손님이 있을 때 정말 가끔 나오게 된다.


그마저도 내가 출근하지 않은 날 나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고양이 녀석을 만나지 못했다.


시간은 더 흘러 내가 한식당을 그만두는 날이 다가왔다.


고양이 녀석에게 그만두는 날짜를 미리 일러두었다.

녀석의 sns를 받아두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동네를 지키는 얌전한 고양이와 이별을 준비한다.


한식당을 떠나는 당일이 되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잠시라도 연이 닿았던 친구들이 나를 보기 위해 식당을 찾아줬다.


내심 고양이 녀석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마지막 퇴근 시간.

나 홀로 불을 끄고 마감을 하고는 문을 잠근다.

마지막날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나에게만 마지막일 뿐, 다른 이들에게는 똑같은 일상 중 하루일 뿐이다.


이런 생각들을 갖고서,

반지하에 위치한 식당에서 나와 계단을 올랐을 때,

나를 기다리던 고양이 녀석을 발견한다.

기둥 뒤에 몸은 숨기고 얼굴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쯤 나온 얼굴을 보는데 웃음이 나왔다.


‘영락없이 고양이가 아닌가’

오랜만에 만나 나의 냄새를 맡으며 경계하는 친구네 고양이가 떠올랐다.


이 녀석이 고맙게도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나는 성공한 집사였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녀에게는 큰 용기이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했을 것이다.


나와의 시간이 그녀 또한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쿠키상자와 함께 본인을 꼭 닮은 치이카와에 나오는 캐릭터 하치와레 피규어를 선물 받았다.


가게에서 역까지 가는 5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와 나눈 대화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많은 대화를 나눈 기분이다.


마음으로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부족한 일본어라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그녀에게 짧은 메시지를 전했다.

고양이 같다는 말 뒤에는 조심스러움이 담겨있기에,

평소 그녀에게 하지 못했던 응원과 위로의 말들을 건넨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신기한 점은 녀석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 감정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역시나 답은,

귀여운 고양이를 봤을 때 느끼는 애호가의 감정인 것 같다.

사람에게 느끼는 애호심이라. 참 독특한 마음이다.


이녀석과의 묘연 같은 인연에 감사함을 느낀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