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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오후 5시 돌솥비빔밥

서서히 삶이 저물어 간다는 것은.

by 도쿄키무상

한순간, 소소한 나만의 생각의 세계.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던 나는

평범한 장면 속에서 작은 주제를 떠올리고,

어느새 ‘생각의 세계’로 빠져든다.


때론 가볍고 장난스럽게, 때론 깊고 무겁게.

오늘은 짧게.



"こんにちは"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20년이 넘도록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오시는 할아버님 손님이 계신다.


나는 いらっしゃいませ(어서 오세요)가 아닌 안부를 묻는 인사를 건넨다.


"石焼き"

수다스럽지 않은 할아버님께서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늘 같은 단어를 말씀하신다.

石焼き(돌솥비빔밥) 하나를 외친 뒤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계실 뿐이다.


"はい!石焼一つですね!"

나 역시 메뉴 주문을 받을 뿐이다.


도쿄 한식당에서 10개월가량을 일했었다.

30년을 넘게 신주쿠에 자리한 식당인 만큼, 많은 단골손님들이 찾는 가게이기도 하다.

참 다양한 손님분들이 많지만, 유독 내 기억에 남는 손님 한분이 계셨다.


매주 토요일, 저녁 장사가 시작되는 오후 5시, 오픈과 동시에 찾아오시는 분이 있다.

반지하에 위치한 식당 계단을 천천히 내려와 항상 그렇듯 가벼운 목례와 함께

돌솥비빔밥이라는 단어 한마디만 뱉으시고는 역시나 늘 같은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음식을 기다리신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20년이 넘게 주말 오후 5시면 찾아와 한결같이 돌솥비빔밥만 드셨다고 한다.


종종 이런저런 관심 없는 질문을 하는 일본 어르신들이 많았기에,

묵묵하신 이 할아버님이 나는 늘 반가웠다.


그저 흥미로운 마음으로 , 하루는 말 한마디를 건네보았다.

“今日寒いですね”

‘오늘 춥네요’라는 상투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말.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실 뿐이다.


나는 금세 마음을 다잡고, 어르신의 고요를 지켜드리기로 했다.

매번 이 고요 속에서 어르신께서는 식사를 하시고, 조용히 일어나 거스름돈이 필요 없게끔,

딱 맞는 돈을 테이블에 두고 가신다. 나는 역시나 이런 어르신이 반가웠다.


내가 일에 적응하고 어느덧 많은 단골손님과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쯤,

돌솥어르신은 그저 나의 일상 중 스쳐 지나가는 한 명이 되어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께 어르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몇 년 전에는 할머님과 함께 매주 오셨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것 같다고, 1~2년 전부터 함께 오시지 않았다는 말.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식당 사장님의 가벼운 말로 치부하기에는,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였다.



돌솥 어르신을 보면서 늘 해왔던 생각이 수면 위로 올랐다.


내 생각의 뿌리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들.


인간을 비롯한 생명은 유효하다는 것.

무한하지 않은 시간 위에 놓였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평생을 함께할 인연을 만나고,

필연과 우연 속에 만난 사람과의 관계 또한, 애석하게도 무한하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끝, 죽음을 상상해보고는 한다.

나 역시 나의 끝은 어떠할지 그려본다.


최근 지인 두 명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나이가 들어 서서히 삶이 져가는다는 것과,

나도 모르게, 주변인들도 모르게 생을 떠나간다는 것,

무엇이 낫고, 나쁜지를 따지기에는, 죽음이라는 글자 앞에는

그저 같은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어가면서 매년 궁금하던 부분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 죽음은 두렵지 않은 건가,

아니면 오히려 가까워지는 죽음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가.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으나,

돌솥 어르신의 모습을 볼 때면 이런 생각들이 맴돈다.

어느 정도의 연륜이 쌓여야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되는가,

돌솥 할아버지 정도의 세월을 가지면, 어떤 눈으로 생을 살아가는가,

또 내 옆에 없는 누군가를 대신해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소 실례되는 질문들을 끝내 말로 내뱉지 못한 채 던지고는 했다.



그러다 나의 무례함을 스스로 매듭짓는 나의 답.


어쩌면 돌솥 어르신께서는 매주 같은 장소, 같은 음식을 먹으며,

과거의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그저 어르신의 남은 삶이 평온과 안식이 자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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