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성실 K 국민 사이에서 피어난 장미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하기 싫은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 했다.
검은콩 먹는 게 싫었던 어린이는 검은콩만 식탁 밑에 떨어져 있을 때가 많았고(남겼고)
야간자율학습이 하기 싫은 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교탈출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센스라고 좋게 포장해 주는 잔머리는 조기 자가학습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안다.
잔머리는 임기응변의 히든카드가 될 수 있지만 실수와 실패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피하고 싶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소중하다는 합리화와 함께. 수동적인 삶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의적으로 원하는 목표가 생긴다면 거침없이 질주해 나가는 야생마의 본능이 이때서야 깨어난다는 것을.
이쯤에서 20대를 보낸 시간을 돌아본다면 묘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있다. 아니 후회가 전혀 없다는 게 맞는 말이다. 비록 더더 많은 연애를... 못해본 게 아쉬운 거라면 아쉬운 점이겠지만. 눈부신 20대를 가득 채우며 맞이한 30대. 이어질 거 같았던 성취감의 자리에는 혼돈과 카오스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내 인생에 공백이라고는 없었던 20대였는데 30대의 신고식인 것 마냥 1년 넘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무것도 없는 터널이 시작되었다. 작디작은 서울의 원룸방에서 음지의 시간을 오롯이 버티기 위해 새벽까지 영화만 보다가 점심즈음에 일어나는 패턴의 반복. 돌아갈 수 있는 나이가 있다면 30살이라고 꼽을 만큼 그때는 꿈도 희망도 다 놓친 기회 없는 30대 늙은 여자라고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 애기인주제에 하고 저도 코웃음이...).
친구의 소개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의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후 약간의 텀을 가지며 이직을 했지만 일을 하고 또 그 사이 공백의 시간을 가지며 들었던 생각은 구체적이진 않아도 추구하고 만족하는 방향성만 잃지 않으면 그 와중에 성장을 하고 발전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워딩으로만 보면 거창한 말 같지만 직장인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이전에 없었던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하며 어떤 태도로 일상을 살아가는 게 덜 좌절하고 성취감은 더 가질 수 있는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사람은 사회화된 동물이니 혼자서는 오랜 시간을 보낼 거 같진 같지만 지금의 이 순간과 하루를 채워갈 때 돌고 돌아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될 것에 믿어 의심치 않기에. 야무지게 빈둥거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