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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나나 Sep 16. 2023

편의점 일이 제일 쉽다고요???

#1. 편의점 침입 작전

  4년 정도 슈퍼를 한 적이 있다.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되었지만 문제는 거리였다.

겁이 많아 운전도 못하는 뚜벅이로서는 가게와 집이 가까운 게 최고다.

나는 튼튼한 체력의 소유자도 아닌 데다 급한 성격에 맞춰 움직이느라 행동에 늘 조바심이 묻어났다. 그런 탓에 가게에 도착할 즈음에는 얼굴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하루에 쏟아낼 기력의 반 이상은 날아가고 없었다.

가게가 집에서 가까우면 얼마나 좋을까... 여유로운 출근길은 그저 꿈에 불과한 것인가...

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슈퍼를 매일 지나치며 한껏 부러움의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눈빛의 색깔은 점차 바뀌어 갔다. 부러움을 넘어 열망이라는 색으로.

언젠가는 꼭 내가 저 가게의 주인이 되리라...



 나의 열망이 실현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작고 허름한 동네 슈퍼였던 그곳은 어느새 깔끔하게 새로 단장한 편의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슈퍼를 하고 싶었던 나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나의 게으름에 탄식을 토했다. 아이들이 좀 더 크고 나면 할 생각이었다. 역시 세상은 내 입맛대로 돌아가지 않고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그곳은 전쟁터 같은 나의 삶 속에서 더할 나위 없는 요충지였다. 집에서 불과 2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꿈의 출근길,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도 언제든지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곳.

그렇다. 간판만 편의점으로 바뀌었을 뿐, 문제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열망의 전투력이 상승했다. 기세에 힘입어 내가 차지해야 할 요새를 꼼꼼히 둘러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후~ 숨을 크게 내뱉고 차가운 은색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겼다. 딸랑, 작은 종소리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어서 오세요."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요새의 수장인 것 같았다.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고 은밀한 첩자처럼 괜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게를 둘러보았다.

열 평 남짓한 아담한 공간에 벽을 따라 오픈 냉장고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쪽으로 대여섯 개의 진열장이 늘어져 있고 과자나 라면 같은 식품이 빈틈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작지만 알차 보였다. 슈퍼보다 훨씬 깔끔한 내부도 좋아 보였다. 더욱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때였다.

"저... 혹시..."

갑자기 말을 거는 소리에 나는 마음속을 들킨 듯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요새의 수장은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어떻게 여기에..."

"맞네. 나, 여기 사장. 벌써 2년 정도 됐다. 야."

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저씨는 남편의 예전 직장 동료였다. 같은 직장을 다닐 때는 가족끼리도 왕래가 있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지만 서로 다른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소원 해져버렸다. 그래도 가게를 차렸으면 연락이라도 해주지...

서운한 마음도 잠시, 머릿속 전구의 불이 켜지고 뇌의 회전은 빛의 속도로 빠르게 돌아갔다.  수장을 알고 있는 이상 나의 요새를 차지하는 일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히 스며들어 서서히 내 손안에 들어올 수 있게 기회를 노려야겠다고... 우선 아르바이트라도 제시해 봐야지. 편의점 일도 익히고, 용돈도 벌고.

나는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혹시 남는 파트타임 있으면 저 좀 일하게 해 주세요. 아시잖아요. 몇 년 동안 가게 한 경험도 있고... 정말 열심히 할게요."

"저... 그게... 지금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도 잘하고 있고... 저기 뭐냐... 음..."

아... 까였다. 내 생각과는 정확히 반대로, 확실히, 분명하게... 까였다.

아는 사람이라 반가운 마음에 너무 성급했다. 쉽게 봐선 안 되는 거였다.

아저씨와 나는 카운터를 사이로 두고 보이지 않는 미묘한 신경전을 펼쳤다. 마주한 시선 사이로 무거운 공기만 흐를 뿐이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지금은 후퇴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작전상 후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밀어붙이기 실패, 작전 변경. 작전을 새로 짜서 와야겠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미래의 요새를 다시 한번 쓰윽 둘러보고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나섰다.

딸랑, 내 결심을 굳히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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