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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나나 Sep 18. 2023

편의점 일이 제일 쉽다고요???

#2. 환심 물밑 작전

"아저씨~"

"야, 너 또 왔냐?"

"에이, 집이 바로 코 앞이잖아요."

나는 아르바이트 제안을 거절당하고 나서 편의점을 제집 안방 드나들듯 수시로 드나들었다. 성급하게 몰아붙이는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 조금씩 치고 들어가는 물밑 작전으로 바꾼 것이었다.

예전에도 나를 많이 귀여워했던 아저씨는 처음에는 무척 황당해하더니 손님이 몰리지 않는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점차 반기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매일 아저씨의 말동무가 되어 주며 아저씨의 환심 사기에 돌입했다.

비좁은 출입구 쪽에 기대 서서 몇 시간이고 얘기하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아저씨는 어느 날, 카운터 바로 옆 공간에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를 마련해 주었다.

중심부 돌입 성공! 길이는 다섯 뼘 정도로 크지 않고, 높이는 어른의 허리 정도밖에 오지 않는 카운터의 장벽이 어찌나 크고 높아 보였는지. 드디어 장벽을 넘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그때 확신했다. 나의 영역은 점차 넓어질 것이라고...

감격에 겨운 내가 황홀해하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두서없이 말을 던졌다. 이제는 나보다 아저씨가 더 궁해 보였다. 나는 아저씨가 연이어 던지는 말들을 건성으로 들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중심부로 들어온 이상 뭐라도 건져야 했다.

편의점 중심부는 다른 세계였다. 안에서 바라보는 편의점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나는 중앙에 떡하니 서서 가게를 둘러보았다. 성루 위에 올라 선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한 뿌듯함이 번졌다. 형형색색의 과자, 우유, 라면은 마치 나를 따르는 병정처럼 보였고, 카운터 석 양쪽으로 배치된 '포스'라는 계산대는 듬직한 수하장군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서 빨리 장군이 되어 내손으로 멋있게 진두지휘 하고 싶었다. 하지만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이성의 손이 조급한 내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눈치의 고수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찰싹 붙어 떨어질 기미가 없는 눈치라는 세포는 오랜 시간 동안 개체수를 번식해 셀 수 없이 많아졌고, 경험치가 늘어나 노련해 지기까지 했다. 눈치의 고수인 만큼 나는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제일 힘들다. 손님이 오면 아저씨를 따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웃으며 인사하고, 아저씨가 상품의 바코드를 찍으면 잽싸게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았다. 어리둥절한 아저씨와 손님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올 정도로 뻘쭘했다.

'그래, 나도 안다.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그만 좀 쳐다봐라.'

하지만 여기에서 기가 죽으면 안 된다. 일명 철판 깔기. 내가 생각해도 이럴 땐 참, 여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아니, 좀 오버했다. 아주 친절하게...

"사장님, 와이프 이신가 봐요."

나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웠나, 손님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대사를 날렸다.

"하하... 하하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놓인 아저씨와 나는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매번 같은 질문에 아저씨도 곤란했던 것일까. 의문을 해소하듯 아저씨는 언젠가부터 손님에게 먼저 나를 친동생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갑자기 편의점 사장의 여동생이 되어 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님들도 매일 얼굴을 봐서인지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편의점 사장님 대하듯 구는 손님들을 보자 나의 물밑 작전이 손님들에게도 먹혀들었구나, 절로 악마의 미소가 지어졌다.

멀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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