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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나나 Sep 28. 2023

편의점 일이 제일 쉽다고요???

#3. 끊임없는 시도, 그리고...

나는 매일 편의점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아저씨에게나 손님에게나 눈도장이 확실하게 찍혔다.

이제는 나의 전용이 되어버린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여전히 아저씨와 잡담을 나누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이곳에 오면 억눌려왔던 생기가 다시 부활하는 느낌이었다. 역시 나는 몸을 움직여야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더욱 이곳이 나의 요새가 되어야만 했다.

아저씨도 점점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와 있을 때는 카운터 석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화장실조차 한 번도 가지 않더니 언젠가부터는 수시로 들락거리게 되었다.

"잠깐만 가게 좀 봐줘. 화장실 금방 갔다 올게."

"네. 다녀오세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아저씨가 없는 심심한 틈을 타 편의점을 한 바퀴 둘러보며 구경을 했다.

'상표가 앞으로 보이게 해야지.'

나는 상품을 돌려세우려 자연스럽게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수시로 정리하는 습관이 여기에서도 발동이 되어.

'오, 음료수가 1+1 이네. 이따가 사야지.'

혼자 편의점 놀이를 하고 있던 중, 등 뒤에서 딸랑, 종소리가 났다. 손님이 오셨나 보다. 젊은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나는 얼른 카운터로 돌아가 포스기 앞에 섰다.

"담배하나 주세요."

"네. 4,500원입니다."

"여기, 카드요."

잠깐,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순간 몸도 머릿속도 일시 정지가 되었다. 아저씨 옆에서 상품을 비닐봉지에만 담기만 했지 직접 계산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머리에 스쳤다.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려왔다. 침착하자. 먼저 담배의 바코드를 스캐너로 찍고 그다음엔... 카드, 카드... 카드를 어떻게 하는 거였지.

"뭐 하세요? 빨리 좀 해요."

말똥거리는 눈으로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젊은 남자를 보자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 잠시만..."

그때 구세주처럼 아저씨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창피함이 극에 달해 온몸이 재가 되어 없어졌을 것이었다. 편의점을 하고 싶다는 의욕만 앞섰지, 정작 아는 것은 한 개도 없다는 자괴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너무 창피한 모습을 보여 뻘쭘한 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움을 불러일으켰나, 아저씨는 부드러운 눈빛과 어조로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아저씨가 가르쳐준 결제방식은 정말 간단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저씨는 매일 드나드는 나에게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듬직한 체격에 맞게 호탕한 웃음을 날리는 아저씨는 정말 나를 친동생처럼 대했다. 그런 아저씨의 모습에서 나는 따뜻함을 느꼈다. 솔직히 나 같았으면 귀찮다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을 텐데 말이다. 고마웠다. 나는 어느새 아저씨에게 정이 들어 버렸다.

아저씨를 매일 봐서인지 어느 날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중 무심코 생각이 들어왔다.

'아저씨는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때우던데...'

차가운 냉기에 둘러싸여 긴 시간 동안 일하는 아저씨에게 따뜻한 음식을 주고 싶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는 서둘러 만둣국을 끓여 아저씨에게 갔다. 오후 시간에만 오는 내가 저녁시간에 나타나자 아저씨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이 시간에 웬일이야? "

온기가 날아갈까 랩으로 꽁꽁 싸맨 만둣국을 수줍게 건네며 나는 말했다.

"아저씨, 별 거 아니지만... 그냥, 따뜻한 거 한 그릇 하시라고..."

만둣국을 받아 든 아저씨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움찔거렸다. 처음 봤다. 아저씨가 그런 표정을 짓는 모습을. 이곳에서 처음 아저씨와 만났을 때만큼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내가 괜한 짓을 했나. 그만 돌아서는 내 발걸음을 붙잡은 건 아저씨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고마워... 잘 먹을게. 처음이야... 나에게 따뜻한 음식을 갖다 준 사람."

아... 순간, 가슴이 뻐근해져 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할 것 그랬다. 시커먼 계략에만 눈이 멀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린 것 같아 후회가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음 날 빈 그릇을 내민 아저씨는 다정함을 넘어 경외로운 눈빛을 보냈다.

부담스럽게 왜 이래. 하루 만에 어제와 다른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그러나 수확은 확실히 있었다. 따뜻한 국물이 아저씨의 마음을 녹여 버렸나 보다. 아저씨는 조금씩 본인의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내가 편의점을 두 개 하고 있어."

"그래요?"

"한 개는 와이프가 하고 있는데, 이번에 와이프가 공인중개사가 되어 할 수 없게 되었어. 부동산을 차려야 되거든. "

"와~ 언니, 대단하네요."

"그래서 여기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고 하거든. 내가 그쪽 편의점을 맡아야 돼서."

"아... 네."

"혹시 네가 한 번 해볼래?"

"아, 네... 네???"

내가 잘못 들었나?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아저씨의 얼굴만 쳐다보는 내게 아저씨는 환한 웃음을 보였다.

"여기 하고 싶어서 매일 드나든 것 아니었어?"

"아니... 전... 편의점 일에 익숙해지려고... 그런데 갑자기..."

"한 번 생각해 봐."

별안간 훅 들어와 당황한 것뿐이지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이 있었으면 진작에 빨리 얘기를 했었어야지. 여태껏 혼자 허튼짓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나의 기분은 리셋되어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동안 노력했던 결실이 이제야 맺어지는구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흥분으로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 짜릿한 순간을...

드디어 내 손안에 들어온다. 나의 요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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