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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Aug 11. 2023

내 마음 편하자고 떠는 게 궁상이에요

쿠팡도 낮은 가격순 정렬부터 시작하는 거 나만 그런가 봐

온라인 쇼핑을 할 때 검색 키워드를 입력하고 늘 최저가순 정렬을 한다. 무료배송을 우선으로 보고 적당한 걸 찾지 못하면 배송비까지 합해 계산해 최저가인 것부터 순서대로 살펴본다. 마트에 가면 1+1 딱지가 붙은 물건에 먼저 눈이 가고, 썩 상태가 좋지 못한 채소에 할인된 가격표를 붙여 놓은 카트를 기웃거린다. 

좋아하는 샌들 브랜드가 있는데, 눈에 띄지 않는 하자가 있는 제품을 모아 세일하기를 기다렸다 구입한다. 8월에 하자 제품 세일을 하기 때문에 그때 신발을 사뒀다가 다음 해 여름에 신는다. 요즘 신는 신발이 지난해 산 것들이다. 장바구니로 쓰는 에코백은 세상에나 15년 전부터 쓰던 것이다. 15년이나 된 줄 몰랐는데 지금 따져보니 그렇다. 돈 주고 산 것도 아니다. 식품 박람회 같은 곳에 들렀다가 기념품으로 받은 것이다. 

집에 있는 살림살이들을 생각해 보니 좀 너무하다 싶은 것도 있다. 올해로 결혼 8주년인데 결혼 전 자취할 때 쓰던 이불을 아직도 쓴다. 유통기한이 며칠 지난 우유나 치즈는 다른 식구들은 안 줘도 내가 먹는다. 이런 식습관에 단련이 되었는지 난 뭘 먹어도 배탈이 잘 나지 않는다. 같은 음식을 다 같이 먹고 다른 사람들이 앓아누울 때도 나는 멀쩡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팔아서 돈 만원 될 것 같은 건 당근마켓을 통해 팔고, 그렇게 생긴 돈으로는 다이소에서 생활용품 쇼핑을 한다. 

요즘 집에서 일하면서는 에어컨을 틀지 않고 선풍기 두 대를 틀어놓는다. 그렇게 해도 방 안 온도는 32도를 웃돈다. 혼자 있는 집에 에어컨을 선뜻 틀게 되지 않는 것이다. 땀을 뻘뻘 흘려도 그게 마음 편한 내 마음을 가끔은 나도 모르겠다.

15년 된 에코백. 접어 넣어둔 탓에 구김이 간 것뿐이지 아주 멀쩡하다. 구멍 난 곳도 없고 손잡이 부분도 탄탄하다. 심지어 얼룩 없이 깨끗하다.


남들 보기에 그렇게 형편이 나쁜 편은 아니다. 대출이 있지만 내 집마련을 해서 쫓겨날 걱정 없이 엉덩이 붙이고 살 집이 있고, 아이 하나에 남편과 내가 맞벌이를 한다. 한 달 지출 금액을 계획해 두고 신용카드를 쓰는데 원할 때 외식을 할 수 있고 주말에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적어도 금전적인 부분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나설 수 있다. 독일 3사를 비롯한 외제차는 없지만, 명품가방을 척척 골라 매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간 남들 말하는 이 시대 중산층에는 낀다는 것이다.


가까운 지인이 한 번은 '언니는 왜 이렇게 아껴 써? 최저가, 핫딜 이런 거 안 찾아보고 필요한 거 그때그때 사도 되잖아' 하고 말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최저가로 안 사도 통장에 구멍 나지 않는다. 핫딜 뜨는 거 기다렸다가 벌크로 사서 쌓아두느니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제값 주고 구매하는 게 더 합리적인 소비일 수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궁상으로 아낄 수 있는 것은 푼돈이다. 부자가 되기는커녕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정도도 아주 미미하다.


고민이나 망설임 없이 물건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비싼 옷과 신발, 명품 가방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또 부럽고 외제차 타는 사람은 심지어 근사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져도 난 도무지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는 성미인 것이다.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80년대에 태어난 K장녀라서 그렇다고 말해주는데 글쎄, 같은 80년대생 장녀도 다 나 같지는 않던데 말이다. 


얼마 전 내 생일엔 신랑이 명품 가방 하나 사주겠다며 골라보라고 했다. 물론 검색은 해봤지만 가격을 보면 다른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이 돈이면 해외여행 한 번 가는 게 나은 거 아닐까? 이런 가방 사는 건 내 분수엔 안 맞는 것 같아.' 그리고는 결국 4만 2천 원짜리 가방을 샀다. 그것도 정가가 7만 원인데 세일하길 기다렸다가 두 달 만에 샀다. 차도 외제차로 바꿔볼 수 있었다 어차피 할부니까. 하지만 자동차 가격 검색을 하다가 갑자기 개똥철학을 들이미는 것이다. '차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바퀴가 네 개 달려있고 사람과 짐을 실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궁상떨기의 문제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나 스스로의 가치를 낮춘다는 것이다. 나는 안분지족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가끔은 너무 궁핍하게 굴어서 내 분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남들 보기에 나 너무 후져 보이나?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그런 걱정의 크기보다 궁상떨 때의 마음 편안함이 더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다른 문제점은 나만 궁상떨면 되는데 남들의 소비를 보며 왜 저럴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내 못된 심보에서 나온다. '만날 돈 없다 앓는 소리 하더니 근사한 가방을 샀네.' 이런 옹졸한 마음이다. 사실은 나도 하나 갖고 싶어서 그런 건데, 결국에는 어떤 가방을 살지 결정하는 순간에 주저하는 나를 탓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로또에라도 당첨이 되어서 큰돈을 얻게 된다면 내 소비습관이나 생활습관이 달라질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급여노동은 관둘 수 있겠다. 아무래도 타고나기를 이렇게 타고난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생각하는 이유는 여건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매우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궁상이기 때문이다. 만족, 오늘도 최저가부터 검색하는 나 자신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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