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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ul 24. 2023

‘제 맛’을 내는 시간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읽기

와인이 숙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와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흔히 인생이나 가족, 연인, 친구를 포함한 사람들의 관계도 숙성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와인, 인생, 사람들의 관계가 숙성되어 ‘제 맛’을 내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기에 시간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중요하고, ‘제 맛’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Back to Burgundy)은 와인에 대한 영화는 아니지만 와인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와인에 대해서 ‘맛’ 볼 수 있었고, 와인과 함께한 장, 줄리엣, 제레미 삼 남매의 인생에 대해서도 ‘맛’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장남인 장의 인생에서 아버지와의 불화가 영향을 미쳤을 그의 삶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여전히 얘깃거리를 남겼다. 궁금했던 것은 그들의 불화가 아니라 불화를 포함하여 장이라는 사람이 결국 어떤 맛을 내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와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맛’을 떠나서도, 와인이 그저 와인이 되기 위해서도 사람들이 함께하는 노동이 필요하다. 그 노동은 기후와 토양 등 자연의 이치를 잘 알고 따르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때’를 아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씨를 뿌릴 때, 거름을 줄 때, 수확할 때를 알아야 한다. 와인이 숙성되어 ‘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제 때’에 맞는 필요한 노동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바라는 맛을 내기 위해서는 그 노동에 기술과 정성도 더해져야 할 것이다.  


평생 와인을 ‘맛’ 내며 살다 죽음을 앞둔 삼 남매의 아버지가 내려던 와인‘맛’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의 와인을 맛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모인 삼 남매가 함께 수확하여 맛보던 그 와인의 맛도 궁금했다. 각자의 삶이 다른 만큼 그들 삼 남매가 내는 와인의 맛도 다를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맞은 아버지와 장남의 마지막 만남. 아버지의 장에 대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은 와인 맛처럼 만족스러운 것이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와인은 모르겠으나 과연 자식에게 만족하는 부모가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애정 때문일 것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애정 때문에 그럴 것이다. 늘 잘 되기를 바라며 걱정하고 챙겨주고 베푸는 부모의 애정이 깊어서 그럴 것이다. 깊은 애정이 되려 그들 부자(父子)의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큰 아들 장은 아버지와의 불화로 아버지를 떠났다. 연락 없이 지내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서야 돌아온다. 그들 부자의 마지막 만남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들 부자간에 불화가 있었거나 없었거나 불화의 원인이 아버지의 애정이었거나 아니었거나 장이 아버지를 원망했거나 안 했거나 그들이 마음으로라도 화해를 했거나 안 했거나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헤어진 아버지와 장이 각자의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은 아버지의 와이너리를 동생들에게 남기고 자신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가정을 이룬 장 역시 아버지가 그랬듯이 자신의 아들에게 애정을 쏟을 것이다. 그렇게 장은 인생이라는 시간에서 자신의 ‘맛’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이 어떤 것이든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은 소중하다. 때론 그 시간이 힘들어 떠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돌아오거나 떠나거나 와인도 인생도 사람의 관계도 계속될 것이니 다시 ‘제 맛’을 내려는 시간으로 돌아간다.


2018.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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