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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ul 25. 2023

그가 살려했던 삶을 살았는가

F. 카프카의 [법 앞에서] 읽기

문지기가 지키고 있는 ‘법 앞에서’ 시골에서 온 사람은 서성거린다. 서성거리다 끝내 법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못하다가 못하고 만다. 시골에서 온 사람은 “법이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들어갈 수 있게 열려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랬던 그였지만 “그럴 수는 있지만”, “지금은 안돼.” “그렇게 끌린다면 내가 금지하더라도 들어가 보게. 나는 힘이 세지. 그런데 나는 최하급 문지기에 불과하다네. 홀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더 힘센 문지기가 서 있지”라고 말하는 문지기를 유심히 살펴보다 입장이 허가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그의 생각과 현실은 달랐지만 허락될 때까지 여러 해를 기다린다.


무작정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불운을 큰 소리로 저주하기도 하고 문지기의 모피외투에 붙은 벼룩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골에서 온 사람은 나이가 들고 눈이 멀고 죽음을 앞두게 된다. 그리고 임종을 앞두고 문지기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모든 사람이 법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지난 수년 동안 나 이외에는 아무도 들여보내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된 일이지요?” 문지기가 답한다. “이곳은 너 이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허가받을 수 없었어. 왜냐하면 이 입구는 오직 너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제 가서 문을 닫네.”


시골에서 온 사람은 왜 법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을까. 그에게 법은 곧 사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가 살아가야 할 사회의 질서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다면 살겠다면 법 안으로 들어가려 해야 하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까. 죽음을 앞둔 시골에서 온 사람에게 물을 수 있다. 당신은 법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습니까. 문지기의 말처럼 그 문은 당신에게만 혹은 당신에게는 허락된 문이었습니다. 아니, 당신 말처럼 법은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물음은 그가 법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는, 그가 들어가려 했다면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전제 하에 의미 있는 물음이다.


그 물음에 대해 시골에서 온 사람, 아니 카프카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지기의 말처럼 애초에 그가 법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그는 들어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답하지 않은, 답하고 싶지 않은, 답할 수 없는, 그가 법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를 ‘두려움’과 ‘거부감’때문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애초에 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고, 두려움이 거부감을 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들보다 중요한 것은 그는 법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는 한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삶이 만든 그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길들여지고 길들여지다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길들이면서 살아온 그런 사람인 것이다. 법의 허락을 기다리거나 허락을 구하려 할 수는 있지만 법이 허락하지 않는 한 스스로 법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것이 그를 길들인 사회의 지배질서였던 것이다.


그에게 물어야 할 것은 그 삶이 자신이 살려했던 삶인지 아닌지. 그것이다. 그는 그가 살려고 한 삶을 살았나? 사회의 지배질서가 어떠하든 법 앞에서 서성거리는 삶이 그가 살려했던 삶이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물음에 그가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애초에 그렇게 길들여진 그의 삶은 그가 선택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른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법 앞에서 서성거리지 않도록 살아왔어야 했던 것이다. 그는 법 앞에서 서성거리는 삶을 살도록 길들여졌던 것이고 그것이 그가 살 수 있는 삶이었던 것일 뿐이다. 그가 다르게 살 수 있는 길은 다른 법을 가진 곳에서 다시 태어나거나, 그곳과는 다른 법이 있는 곳으로 떠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곳에서 여느 사람들처럼 그들에게 허락된 법 안으로 들어가거나 법을 새롭게 만드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방식, 그가 살 수 있는 삶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럼에도 그의 삶에서 그가 살려했던 삶을 살았는가. 그것만이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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