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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ug 07. 2023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경유처럼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읽기

언제 안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여전히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들을 입버릇처럼 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느낌은 예전 같지 않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먹고살기가 나아져서 인지, 나아진 건 없지만 자연의 이치에 따라 겨울을 견디며 봄날을 기다리는 것일 뿐인지. 어찌 되었든 '먹고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도 '힘든 삶'의 의미도 달라진 것만 같다.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의 경유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먹고살기 힘들어 보이는데, 아니 힘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힘들기는 한 것 같은데 경제적인 이유보다 다른 이유 때문에 힘들어 보였다. 그 이유가 경제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경제적인 이유보다 더 중요해 보였다. 경유는 정말 힘들어 보였는데 힘들어만 보이지 않았다.


술은 취했어도 손님은 왕인데 인사 안 한다고 대리운전을 하는 경유에게 시비 거는 고객님은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그럴 것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유에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을 것이다. 먹고사는 게 힘들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만만한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풀게 되어 있다. 핑곗거리를 만들어 대리운전 비용을 안 주려는 고객님에게 대 들었다가 인격살인까지 당하는 경유.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렇게 사는 거야". 먹고살기 힘들어 보이지 않는데 먹고살만하니까 사람을 만만하게 보는 것일까. 그러니까 그들은 그렇게 살만한 것일까. 


여자 친구 현지가 사라졌다. 그녀의 자취집에 얹혀사는 경유는 결혼할 능력은 안 되니 현지 부모님이 상경하는 날이면 며칠 사라져야 한다. 당당하게 인사드릴 처지가 못 되니 현지에게 미안한 마음 한 가득이어서 괴로운데 그래도 그렇지 경유가 집을 비운 사이 얘기도 안 하고 자취집을 빼고 사라지다니. 이해 못 할 것도 없는데, 집세는 오르고 직장에서는 계약 만료되어 해고되고 남자친구는 시원찮고 사라지고 싶을 만도 하겠다만 그래도 그렇지. 동물원에서 나온 호랑이 조심하라더니 말도 없이 사라지다니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


현지 이전의 여자 친구니까 지금은 헤어진 유정과 대리기사와 고객님으로 우연히 만난다. 같이 소설을 썼던 그녀는 등단을 하고 작가님이 되었고 경유는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재능이 없는 관계로 작가의 꿈을 포기한 상태.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그녀가 경유에게 만나잔다. 아파트 비밀번호까지 알려준다. <어차피 발표 못한 것 내가 좀 쓰자> 그녀가 그랬던 이유는 경유가 써 놓은 소설이 필요했던 것. 경유를 두 번 죽인다. 동물원에서 나온 호랑이 조심하라더니 남의 소설로 책을 내겠다니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   


'먹고사는 게 힘들다'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먹고사는 건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먹고사는 게 아니라 정말 힘들어 보이는 건 꿈도 꾸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왜 사는지 궁금해도 하고 그럴 틈도 없이 하루하루 살기 바쁜 사회를 살아내는 일이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잘 먹고 잘 살아 보겠다고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면 그 덕분에 좋은 직장에서 높은 연봉받으며 성공했다고 인정받으면서 먹고살기 힘들다. 


성공해도 먹고살기 힘들다. 사회가 그런 것이다. 그러니 먹고살기 힘들다고 사회 보고 뭐라 해야지 사람보고 뭐라 할 일은 아니다. 사회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지만 힘들어도 사람들이 힘을 덜어주기도 하는데 사람 때문에 더 힘들 때도 있다. 서로 힘을 덜어주면 좋지만 서로 힘들게만 안 해도 그게 어딘지. 먹고살기 힘든 건 사회가 그러니 늘 그런 것이니 사람들끼리라도 힘이 되어줘야지 안 그러면 더 힘들다. 먹고사는 게 힘든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게 힘들어진다. 


그걸 알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삶의 태도'나 '힘든 삶'에 대해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리라. 그 덕분인지 경유처럼 힘들 것 같은데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좀 덜 힘들어 보인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경유처럼.


2018.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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