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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ug 03. 2023

종수의 분노

영화 [버닝] 읽기

종수의 분노와 함께 영화 <버닝(Burning)>은 끝났지만 종수의 분노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문을 남겼다. 종수는 무엇에 분노했는가. 벤을 불태워버렸으니 벤에게 분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벤에게 분노했는가. 벤이 한 행위에서 무엇이 종수의 분노를 야기했느냐는 물음이다. 


종수는 자신이 사랑했던 해미를 빼앗아간 것처럼 보이는 벤에게 분노한 것으로 보이는데 종수가 벤에게 분노한 이유가 해미를 빼앗아 갔다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벤이 해미를 빼앗아 간 것인지도 분명해 보이지 않을뿐더러 종수가 분노한 이유가 단지 벤이 해미를 빼앗아 갔다는 것 때문으로만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종수는 해미를 사랑하고 있었고 벤도 해미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해미가 사라졌다. 벤이 해미를 사라지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종수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벤이 해미를 빼앗아 간 것일 뿐이라면 다시 해미를 찾아오면 될 것이다. 문제는 벤이 해미를 빼앗아 간 것이든 아니든 해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라져 없어져 버렸으니 다시 찾아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수가 벤에게 분노한 이유는 벤이 해미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 아니라 벤이 해미를 사라지게 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해미를 사라지게 한 것이 벤이 아니라 해미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해미가 스스로 사라진 것이라면 말이다. 해미는 평소 아름다운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말하곤 했으니 그럴 수도 있어 보이는 것이다.


벤이 해미를 빼앗아 간 것도 아니고 해미는 사라졌을 뿐인데 벤이 해미를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니라 해미가 스스로 사라진 것이라고 한다면 종수가 벤에게 분노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벤이 해미를 사라지게 했다고 말할 여지는 있어 보인다. 


해미는 육체가 배고픈 리틀 헝거가 아니라 ‘삶의 의미’에 배고프다는 그레이트 헝거를 찾아 아프리카 케냐로 떠났었다. 그레이트 헝거이고픈 리틀 헝거로 보였던 해미는 케냐에서 벤을 만났었다. 해미의 직장 동료의 말처럼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어서 ‘일까. ’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일까.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어 하던 해미는 ‘돈은 막 뿌려주고, 여자는 애지중지해주는’ 중국 남자와 같은 미국인을 닮은 대륙의 남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벤을 만났고 사라진 것이다. 


해미가 바랐던 것이든 아니든 벤 때문에 해미가 사라졌다고 벤에게 해미를 빼앗겼다고 종수가 생각할 수도 있는 지점이다. 그래서 종수는 하는 일은 없어 보이는데 고급 승용차와 강남에 집은 있는 ‘노는 게 일’인 벤에게, ‘지저분한 것들’을 태워 없애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벤에게 분노한 것 일수도 있겠다.


‘즐기면서’, ‘가슴에서 울리는 베이스를 느끼며’, 판단하지 말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벤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종수가 ‘너무 진지한 것’이 종수가 분노한 원인일 수도 있겠다. 해미가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되는데 판단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종수 자신이 분노의 원인일 수도 있겠다.


해미가 그랬을지 모르듯 ‘자연의 도덕’에 따라 지저분한 삶으로부터 아름답게 사라져 벤처럼 즐기며, 느끼며, 받아들이며 살아가면 되는데 너무 진지한 종수가 그러지 못하는 것이 종수가 분노한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종수의 분노는 종수가 자신의 삶으로부터 사라지지 않기 위한 행위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2018.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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