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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ul 26. 2023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영화 <33>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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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대통령 선거 소식을 접하면서 생각났던 영화가 <33>이다. 2016년 개봉한 영화는 칠레의 산호세 광산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2010년 8월 5일 칠레 산호세 광산이 붕괴하여 광부 33명이 700m 지하에 매몰된 사건이다.    

 

광산이 붕괴하기 전부터 광부들의 책임자가 회사에 위험을 알렸다.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회사는 광부의 경고를 무시한다. 사고가 나자 회사는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사건을 무마하기에 급급하다. 탄광을 폐쇄하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2

     

광부 33명에게 주어진 식량은 며칠 분량밖에 없었다. 내가 살아야겠다는 이기적인 행위가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섭씨 32도, 습도 95%의 700m 지하에서 식량 부족, 죽음에 대한 공포로 그들이 갈라져 싸우다 공멸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칠레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었던 전쟁으로 인해 분명해진 그들의 차이만을 강조하는 몇몇 칠레 광부들이 식량이 바닥나면 볼리비아 광부를 잡아먹겠다는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광부들이 가족들과 풍성한 음식을 향유하는 상상을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그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식량이 바닥나고 있던 것이다. 반면, 식량을 정확하게 33등분 해서 나누려던 마리오의 모습은 그들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식량이 바닥날 때까지 식량을 철저하게 관리하여 배분하던 마리오가 없었다면, 광부들을 다독이며 하나로 살려내던 마리오가 없었다면 그들이 69일을 살아남아 구조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만큼 마리오의 존재가 커 보였다.           



3     


마리오는 식량을 33등분 하려고 노력했다. 정확히 33등분 되었을까? 광부들 중 누군가는 불만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마리오의 노력이 모두가 살 수 있는 최선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들은 서로를 도왔고 그들 모두는 살아날 수 있었다.     


마리오가 보여준 것과 같은 리더십은 위기 상황에서 발휘되어 빛을 발하곤 한다. 그렇다고 그런 리더십이 위기 상황이 닥치면 갑자기 생겨날 리 없다. 마리오의 평소 생각과 행동 습관이 리더십으로 발현된 것일 테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내고 있었지만 광부의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과 국가의 관행에 의해 광부들은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광부 가족들의 국가에 대한 요구와 회사의 위협에도 물러서지 않던 저항과 전 세계 이웃들의 관심과 지지 속에 그들 모두는 구조된다.     



4     


칠레의 광산 붕괴 사건은 노동자들의 생명보다 회사의 이윤을 우선하여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전형으로 보였다. 그 때문인지 지난 1월 27일부터 한국에서 시행되기 시작한 중대재해처벌법이 겹쳐지기도 했다.     


기업이 안전 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물어 산재 사망을 막자는 것이다. 안전 조처를 충분히 하는 것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최선일 것이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기업을 지키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칠레 광부들의 기적 같은 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은 반가움을 준다. 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함도 준다. 칠레의 광산에서,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감동이며 반가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기업 하기 두렵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업이 안전 관리 의무를 다하는 것이 그토록 두려운 일인가. 이윤을 남기지 못할까 두려운 것인가. 더 이상 노동자들의 죽음으로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 없기를 바라본다.


2022.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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