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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그리고 기억에서 두 번 벌어지는 전쟁

by 윤해


2024.06.23

포탄과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과 전쟁이 끝나고 세월이 흐른 후 살아남은 자의 기억으로 소환되는 전쟁의 스토리는 사뭇 다르다.

무명용사 위령탑 위령비, 전쟁의 진실을 가장 정확하게 현장에서 겪은 용사들은 이름도 몸도 남기지 못하고 처참하게 산화되어 한 덩어리가 된 채 이 나라 이 강토에 한 줌 흙이 되어 묻히고 흩어져 오로지 영혼 만이 무명용사가 되어 명예도 영광도 없이 초라한 영만 위로받는 탑과 비가 되어 우리의 번영을 내려다보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초라한 아침을 먹던 개성 주둔 1사단 12 연대 병사들에게 들이닥친 북한군 최정예 6사단 방호산 부대는 수십 년간 중국 국공내전이라는 실전경험을 가진 팔로군 출신 최정예 부대였다.

아직 철로가 끊기지 않고 있던 38선 이남 개성역으로 중 무장한 인민군 6사단 천여 명이 기차를 타고 개성역에 도착한 그해 그날 새벽의 개성은 속절없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적의 진군 속도를 5분이라도 늦추려고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린 12 연대의 무명용사들과 살아남아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대오를 정비하여 한강이남으로 철수한 800여 명의 병력은 훗날 전쟁을 역전할 수 있었던 귀중한 토대가 되었다.

3일 만에 속절없이 수도 서울이 무너졌는가? 아니면 열 배에 육박하는 인민군 병력과 T34소련제 탱크로 상징되는 준비된 화력을 가진 인민군의 기습남침에 우리 국군은 어떻게 3일을 버텼을까?라고 하는 두 가지 상반된 명제 앞에서 우리는 전장의 참상이라는 한 번의 전쟁 그리고 기억이라는 또 한 번의 전쟁, 즉 두 번의 전쟁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여전히 이념의 틀로 전장의 참상을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

전장에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는 기억이라는 스토리를 만든다.

무명용사의 장렬한 전장만큼이나 살아남은 자의 기억의 무게도 전쟁의 본질에 접근한다.

동두천을 지키던 대대장 김풍익 중령의 야포 조준사격으로 T34 전차를 파괴하고 장렬히 전사한 영웅담만큼이나 의정부 동두천의 참호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들의 귀중한 생명이 모여 모여 적의 진격속도를 5분 , 10분 늦추어 결국 수도 서울을 3일간 지켜내어 국군과 유엔군의 대 반격의 귀중한 골든 타임을 지켜내었다면 무명용사의 전장에서의 전쟁이나 살아남은 자의 기억 속에서의 전쟁이나 불협화음 없이 지금의 우리의 번영에 귀중한 토대임에는 분명하다.

한국전 참전 유엔군들도 이국의 전장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무명용사들의 전쟁과 이제는 기억 속에도 아른거리는 살아남은 병사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한국전쟁이라는 두 개의 전쟁이 공존한다. 이제 살아남은 자들도 그때 그곳의 전장에서 죽어간 전우들의 곁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위령탑과 위령비에 죽어서 살고 있는 무명용사만큼이나 살아서 죽어가는 퇴역용사들이 눈물로 증언하는 한마디가 이렇게 번영되고 발전한 대한민국을 그때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다며 자신과 전우의 용기와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해 준 대한민국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한결같이 증언한다.

살아남아 증언하는 그들 만큼이나 한국전쟁에서 장렬히 산화한 수많은 호국 영령들께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제는 전장과 기억의 불협화음을 정리하고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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