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4
로고세러피(logotherapy)라는 정신의학 영역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인간의 실존적 의미에 대한 통찰을 20세기 우리 인류에게 제시한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랑클(1905~1997)은 그의 저서 '의미를 향한 소리 없는 절규'에서 "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웃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웃을 수 있는 능력, 더 정확히 말하면 웃음의 강약까지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자신의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고 이에 더해 얼굴 안면근육의 미세한 떨림을 통해 오욕칠정을 복잡 미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만물의 영장 우리 인간이다.
지금은 임영웅이 불러서 더 익숙한 가왕 조용필의 ' 그 겨울의 찻집' 엔딩 가사 " 아~ 웃고 싶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에서 우리 인간은 의미와 감정이 따로 노는 극강의 필살기로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도 속이는 웃음의 달인인 것이다.
그러한 웃음 가운데 웃음을 참지 못해 터져 나오는 폭소와 너무나 기가 막혀서 자기도 모르게 피식 나오는 실소는 그래도 감정의 지배를 받는 직접적이고 솔직한 웃음이라고 한다면 웃는 듯 안 웃는 듯 입을 꼭 다문 채 입 주변 근육과 뺨 그리고 눈 주위 근육을 오묘하게 작동시켜 짓는 사람의 미소는 의미와 감정은 물론이고 인간의 오욕칠정 마저 모조리 담고 있는 불가지 영역의 웃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백제의 미소, 마애여래 삼존상은 개심사 너머 용현계곡 가파른 절벽에 자리 잡아 발굴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불과 65년 전, 1959년이라고 하니
가히 천년의 미소라고 할 만하다.
1111년 고려시대에 제작된 세 분의 부처를 절벽에 새긴 삼존불은 중앙에 아미타여래 오른쪽에 관세음보살 왼쪽에 지장보살로 보이는 고려시대 부처의 특징을 담고 있음에도 백제의 미소로 불린 까닭도 미소의 의미를 사라져 간 백제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찾으려는 후대의 미련 같은 것은 아닐지 궁금하다.
빅터 프랑클은 니체의 말을 인용하여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 그가 미국 비자를 받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상징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전가족이 수감되고 결국 자신 혼자만 살아남아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 때 생존하고 죽어가는 가에 대한 적나라한 기록 '죽음의 수용소'라는 수작을 통해 정신의학 분야에 한 획을 그었다.
빅터 프랑클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인류의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 경험을 단순한 개인적인 비극을 승화하여 극한에 놓인 인간의 본성과 초월의지에 주목하면서 자신을 치유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수년간의 수용소 생활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을 단순한 행운으로 돌리지 않았던 그는 그 안에서 로고세러피의 핵심 원칙인 인간의 자유의지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중요성, 그리고 삶의 의미 추구를, 자신의 생존 경험 속에서 확인하고 증명하여 우리가 누군인가라는 명제에 한걸음 다가간 사람이다.
비슷한 시대 전쟁의 아픔을 소설로 승화한 루마니아 출신의 망명작가 게오르규의 '25시'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미국 역사 100대 영화로 선정된 수작이다.
2차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국가주의 인종주의에 희생되어 나가는 것을 극적으로 그려낸 앤서니 퀸의 명연기, 그중에서도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서 가족을 재회하는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전쟁 중 생존하기 위해 적국군인의 아이를 낳아야 했던 아내, 그리고 자신의 두 아들,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셋째 아들을 엉겁결에 안고 그들을 취재하러 온 사진사의 플래시 앞에서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를 엷은 미소를 짓던 앤서니 퀸의 미소는 50여 년이 지나도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석불의 가운데 아미타여래의 대자대비한 미소와 시공을 넘어 닮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짐작이라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