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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Nov 07. 2024

[윤 해 록] 꽃에 꽂히고, 단풍丹楓에 물들고

 지구에 머리와 같은 뿌리를 박고 지접 하고 살고 있는 식물의 시각으로 사람을 보자.

머리를 땅이 아닌 하늘로 향하고 둥그런 몸통에 가느다란 한 팔다리, 사지를 매달고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금세라도 자빠질 듯 불안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긴다.

봄이면 식물이 만든 꽃에 꽂혀 입을 헤벌리고 부러움과 찬탄에 넋을 잃다가 여름이면 무성한 이파리로 그늘을 만들어 주면 땡볕을 피해 대낮에 오수를 즐긴다.

 가을이면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 다녔는지 주렁주렁 열린 열매를 걸신들린 듯 따 먹다가 찬바람 부는 만추의 단풍丹楓을 보고 단풍丹楓에 물들어 무엇이 그리 슬픈지 물끄러미 형형색색의 단풍丹楓을 바라보다 낙엽 따라가버린 사랑을 쫓아 황량한 겨울의 벌판으로 사라져 버리는구나

사느라 바쁘면 꽃이 피는지 꽃이 지는지 이파리가 무성한지 이파리가 앙상한지 단풍이 물드는지 단풍물이 빠지는지 모른다.

연분홍 붉은빛이 감도는 만첩홍매화萬疊紅梅花가 유혹하는 춘삼월 봄 꽃의 향기에 꽂히고,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온 산이 단풍으로 불그스레 불타오르는 만산홍엽滿山紅葉에 물들어 가지만 꽃이 바람을 타면 허무하게 허공에 날려 봄비를 맞고 떨어지듯이, 물든 단풍에 물이 빠지면 바싹 마른 낙엽이 되어 차중락 가수가 부른 '낙엽 따라가버린 사랑' 노랫말처럼 그 옛날이 몹시도 그리워질 것이다.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멀리 있던 늦가을 산의 경사진 돌길 오르니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흰 구름 피어나는 곳에 인가가 있네.

停車坐愛楓林晚(정거좌애풍림만)
수레 멈춘 것은 황혼의 단풍나무 숲 좋아하기 때문이니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서리 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더 붉어

오언고시五言古詩, 칠언고시七言古詩, 오언율시五言律詩, 오언배율五言排律, 칠언율시七言律詩, 오언절구五言絕句, 칠언절구七言絕句의 7 부문(部門)으로 나뉘며 한시漢詩의 입문서入門書로 널리 읽히는 당시선唐詩選에 실려있는 산행山行이라는 두목杜牧의 漢詩이다.

 꽃에 꽂히고 단풍에 물들어가지만 일출의 양광보다는 일몰의 석양이 길게 내리쬐는 불그스레한 낙조가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더 사로잡듯이 서리 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더 붉은 것은 지금 여기 현재 우리의 마음과 함께 하기 때문이리라 짐작해 본다.

땅에 머리 아니 뿌리를 박고 천년을 사는 지구의 주인공 나무가 빛의 속도로 날아와 지접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며 백 년도 못 사는 지구의 나그네 우리를 위해 만첩홍매화萬疊紅梅花를 시작으로 만산홍엽滿山紅葉까지 현란한 장관을 의연하게 보여주며 위로해 보지만 지구의 나그네 우리는 다만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더 붉어"라고 노래하며 봄꽃과 가을 단풍을 비교하기 바쁘구나

낙엽 따라가버린 사랑처럼 낙엽이 지면 사라져갈 우리의 덧없는 인생을 예감해 보며 그래도 한가닥 가져갈 수 있는 추억을 잡아보는 이 가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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