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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75, 도미노 1975

by 윤해


도미노 현상 domino effect 이란 나란히 세워져 있는 도미노 중 하나가 쓰러지면 순차적으로 다 쓰러지듯이, 어떤 특정 사건이 다른 사건을 연쇄적으로 초래하면서 대규모 사회 현상으로 커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도미노 효과'라고도 한다.

패권국 미국이 베트남에 무력개입을 하면서 내세운 이론이 도미노 이론이다. 즉 소련의 공산화를 베트남에서 막아내지 못하면 인도차이나 반도를 넘어 동남아 전체가 공산화된다는 위기감에서 베트남전에 개입하였지만 결국 파리평화협정을 맺고 베트남전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이 사이공을 함락시키고, 쩐반흐엉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즈엉반민이 항복함으로써 베트남 전쟁이 끝났고 베트남 공화국은 패망했다. 엄청난 보트피플이 발생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큰 충격을 입었다.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나라는 당연히 대한민국이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공산주의와 자유진영의 체제경쟁의 틈바구니에 놓여있는 나라라는 공통점은 물론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상시전력 5만 명 총 30만 명을 파병한 우리로서는 남베트남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보트피플이 되어 바다를 떠도는 참혹한 장면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볼 수 없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도무지 떨쳐낼 수 없는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싸움,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나라 간의 거시사이며 나와 너의 미시사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세상의 원리는 전쟁의 역사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전쟁의 승패는 사실상 싸워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매직으로 가득 차 있다. 개인의 미시사가 판단력 부족인 결혼으로 시작되어 인내력이 바닥나는 이혼으로 달려갔다가 기억력이 가물가물해져서 재혼하는 마치 도미노 게임인 것처럼 국가 간의 거시사도 인내력 부족으로 서로가 죽이고 죽는 열전의 전쟁을 거쳐 국경을 견고히 쌓고 상대도 안 하려는 냉전의 휴전을 하다가 그래도 미워도 다시 한번 판단력 부족으로 데탕트를 추진하고 데탕트를 한 후 서로가 달라진 게 없음을 확인하고 기억력이 오락가락 해져 또다시 죽고 죽이는 전쟁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 사이에 수많은 억측과 설마가 어른거리듯이 냉전과 열전 그리고 휴전사이에서 도미노 이론은 밀고 밀리며 뺏고 빼앗기는 패권질서에서 꽤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내부단속과 긴장조성으로 독재자는 독재를 연장하고 패권국은 패권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고삐가 풀리면 꼬삐 풀린 망아지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독재자와 패권국의 오래된 사고회로인지도 모른다.

1975년은 산유국을 제외한 전 세계를 대불황의 수렁에 빠트린 오일쇼크의 정점을 찍어 전년도보다 심각한 불황에 내몰렸다. 대한민국은 오일달러를 찾아 열사의 중동으로 달려가 오일머니를 벌어들이기 시작했고 국내정세는 인도차이나 사태로 인한 충격으로 박정희는 긴급조치 9호를 발효하면서 사회안전법 등 4대 전시입법을 만들어 국민들의 고삐를 죄기 시작했고 그해 서울 여의도에 국회의사당이 준공되었다. 한편으로 박정희는 2월 12일 유신헌법의 지속성과 이에 대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신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74.4%의 찬성률(79.8% 투표율)로 국민투표가 가결되었다.

1908년 1월생은 이처럼 민의를 묻는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의 적법성을 확보하면서 더욱더 대한민국 국민만을 바라보며 우보를 내딛는 박정희를 보면서 1974년 8월 15일 상처한 개인적 아픔을 뒤로하고 죽음에서 살아온 자들에게서만 풍기는 역사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도미노 이론은 패권국 미국의 전략적 이론의 하나였으나 결과적으로 비록 남베트남이 공산화되었어도 라오스와 캄포디아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공산화의 도미노가 진행되지 않았다. 어쩌면 수 만 명의 미군의 희생과 수 천명의 한국군의 희생이 도미노가 진행되는 연결고리의 한 두 개를 빼내어 인도차이나 공산화는 남베트남에서 그쳤는 지도 모른다.

또 한편 생각해 보면 1890년생 호찌민이 1969년 죽을 때까지 목표로 삼은 것은 베트남의 통일이었고 베트남인들의 번영이었을 뿐 공산주의는 단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다름 아님이었음은 1975년 통일된 베트남이 지금까지 걸어온 모습을 보면 이해가 간다. 아울러 패권국 미국의 도미노 이론도 세계패권질서의 반상에서 일어나는 도미노 게임에 불과했다는 점도 우리는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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