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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88, 손에 손잡고 1988

by 윤해

손을 잡는다는 행위는 인류의 원초적인 화합의 행동이며 생각을 같이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류의 진화는 손과 뇌의 공진화를 통해 문명을 이루고 발전했듯이 뇌를 서로 잡을 수 없는 인류가 고안해 낸 연대와 협력의 상징이 손을 잡는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유추하고 상상해 본다.


88 서울 올림픽은 나나 나라나 대한민국이나 세계 전체 모두에게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사적 의미가 중차대한 인류의 제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망국과 식민지를 거쳐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나라 중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잿더미가 된 나라가 한세대 만에 일어나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자체가 바로 대한민국의 기적이며 더구나 분단국가로서 남북간 체제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승리했음을 세계만방에 선포하는 의미 깊은 대회가 24회 서울 하계 올림픽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는 국내외적 도전이 거셌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발 테러로 중동에서 귀국하던 근로자들을 몰살시킨 비인도적이며 파렴치한 테러행위는 온 세계의 공분을 사면서 더욱더 북한을 고립시켰고 87년도에 일어났던 4.13 호헌과 6.29 선언 그리고 신군부 독재정권을 종식시킨 87 체제의 혼란을 타협으로 수습한 신군부와 국민들의 성숙한 합의는 88 올림픽을 좌초시킬 수 없다는 거국적인 압박이 어쩌면 큰 몫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혼란과 희생 그리고 내분까지도 성숙하게 이겨내고 대한민국은 건국 40년 만에 올림픽을 통하여 변방의 이름 없는 주변국에서 순국선열들과 전몰장병 그리고 해외 파견 근로자들이 꿈에도 그리던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중심국으로 우뚝 일어서게 되었다.


이처럼 국운이 웅비하는 계기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고 화합과 단합을 위해 손을 내밀고 손을 잡는 손에 손잡는 행위가 연속되고 중첩될 때 비로소 일어날까? 말까? 하는 기적이다. 때마침 88 올림픽을 전후하여 세계 패권질서는 소련의 고르바쵸프가 정권을 잡고 그동안 강대강의 동서냉전구도가 해빙을 향하여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올림픽이 비록 순수 체육행사라고 하지만 그것은 수사일 뿐 올림픽이라고 하는 국제행사는 늘 정치의 연장이자 국력의 경연장이며 세계 패권질서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은 불문가지요 주지의 사실이다.


PLO 검은 구월단의 테러로 이스라엘 선수들의 피로 얼룩졌던 72년 뭰헨 올림픽부터 인종차별문제가 터져 아프리카 국가들이 보이콧한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자유진영이 불참한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그리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공산진영이 불참한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88 서울 올림픽 직전 4개 올림픽 대회가 파행으로 치닫는 혼선과 난맥이 이어지고 있어서 88 올림픽을 유치한 대한민국이 중립적 위치에 있지도 않아 대회가 정상적으로 개최되기가 대략 난망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운이 그렇게 좌절되기에는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기에 흘린 피땀과 노력이 허락지 않았는지 러시아어까지 배우며 소련을 설득한 김운용 IOC위원의 정성과 때마침 불어닥친 동서 해빙무드에 힘입어 대한민국 서울은 한강의 기적과 경제개발에 이은 번영을 세계인들에게 마음껏 뽐낼 수 있게 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다 함께 참가한 완전체로서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다.


1988년 8월 23일에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성화 봉송이 세계 여러 국가를 거쳐 1988년 8월 28일에 제주도 땅을 밟으면서 대한민국에 도착했으며, 올림픽 개막 전날인 1988년 9월 16일까지 대한민국 전국 각지를 돌며 올림픽 개막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드디어 9월 17일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이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개최되었고 10월 2일 88 서울올림픽 폐막식이 같은 장소에서 성대하게 마무리되었다. 한국 선수단이 종합 4위를 달성하여 역대 최고성적을 거두었다. 어쩌면 한국선수단의 4강 신화는 이때부터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88년 당시 우리는 대한민국을 찾은 세계인들과 만 손을 잡은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망국의 독립전쟁에서 스러져간 1908년 6월생 매헌과 같은 순국선열과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과 건국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1875년생 우남과 같은 애국지사, 그리고 경제개발을 통해 오천 년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분골쇄신했던 1917년 11월생 박정희와 같은 식민지 청년 출신의 산업화 세력까지 모두가 이제는 사라지고 없지만 지하에서도 대한국민들의 손을 맞잡고 이루어낸 단군 이래 최대 축제 88 올림픽은 이후 온 국민들에게 신명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대한민국호가 선진국으로 가는 막차를 탔다는 실감을 그때 우리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이 88 올림픽의 최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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