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일하다 호랑이를 보고 놀라 뛰어 내려왔다는 아낙의 옛이야기가 전해지는 계곡이었다. 전쟁이 나면 마르고 지친 사람들이 보퉁이를 이고 들고 들어왔다던 가장 구석진 피난처였다. 그렇게 들어오던 어느 피난민 일행이 커다란 벚나무 두 그루 나란히 있던 마을 앞 고개에서 미군 폭격기에 몰살을 당했다고 했다. 개울은 온통 뒤엉킨 시쳇더미였고 핏물이 오래 흘렀다고 했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무성했던 야트막한 바위산을 가운데 두고 좌우 양 계곡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마을 앞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농경지를 끼고 흐르던 개울은 폭이 넓어서 송사리, 중태, 모래무지, 미꾸리가 곳곳에 있었다. 장마 때면 양쪽 계곡에서 쏟아져 내려온 붉은 흙탕물이 몸을 비틀며 포효하는 짐승처럼, 말을 타고 비탈을 내리닫는 장수(將帥)처럼 마을을 지나 거침없이 하류로 흘러 내려갔다. 장마가 끝나고 흙물이 가라앉으면 개울은 더 맑아지고 넓어졌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개울 옆 농지 주인들이 흙을 넣기 시작했다. 논과 밭은 높아지고 개울은 깊어졌다. 아담한 집이 들어오면 참 예뻤을 마을 앞산 밑에는 거대한 창고 건물이 들어섰다. 무표정한 직선으로 규격화된 사각의 건물들은 아귀처럼 논과 밭과 산을 잠식해 들어갔다. 사람 키를 몇 배나 넘는 콘크리트 옹벽이 마을 앞 개울에 세워졌다. 사람도 자유롭게 내려가지 못하고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했다. 산 위에서 개울을 따라 내려왔던 새끼 고라니는 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울어댔다.
양쪽 개울 상류가 그나마 본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산속의 많은 농지가 한동안 휴경지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식들이 학업과 공장 노동을 위해 고향을 떠났고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늙어 구불구불 비탈길을 오르내릴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계곡 안까지 자동차가 오갈 정도로 길이 넓어지고 콘크리트 포장이 되면서 산속에 요양원을 짓겠다고, 전원주택단지를 짓겠다고 개발업자들이 몰려왔다.
산 하나는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 명의로 잘게 쪼개졌다. 그들은 산사태를 막기 위해 심었던 수십 년 된 오리나무와 신나무, 참나무를 자르고 굴착기로 능선을 타고 올라가 구덩이를 파고 매실나무와 대추나무를 심었다. 다음 해 살아남을 매실나무와 대추나무는 거의 없을 터였지만 누가 어디에 몇 그루를 심었는지 적은 종이를 말뚝에 매달고 찍어놓았을 사진은 후에 유실수를 심었다는 증거로 사용될 터였다. 지역 전철선이 지나간다 했다. 개발 정보를 미리 알아낸 개발업자들이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해 쓰는 단계별 수법 중 하나라 했다.
땅의 높고 낮은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던 물길은 종이 위에 그어진 경계선을 따라 급경사가 되었고 빗물은 거대한 폭포수가 되어 그대로 아래로 쏟아졌다. 흙이 유실되고 넘친 개울물에 길은 깨어지고 들떴다. 그 개울에 살았던 물고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풀과 억새 줄기에 집을 짓고 알을 낳고 포르르 포르르 날아오르던 작은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마을과 꽤 떨어져 있지만 계곡의 고요는 언제나 아슬하다. 금방이라도 옆 산이 헐릴 수 있고 뒷산이 깎일 수 있다. 어느 새벽, 구르릉거리며 거대한 굴착기가 안개 낀 산등성을 딱정벌레처럼 올라갈 수 있다. 혈연과 지연과 학연은 개발의 사슬을 공유하고 있다. 도시보다 더 끈끈하게 엉켜있다.
개울 옆 논을 메우고 공장을 세운 이는 어릴 적 옆집에 살던 이였다. 그를 적극적으로 돕고 지지한 이는 못줄 앞에 줄지어 서서 모내기하던 ‘동네 오빠들’ 중 하나이고 여름마다 마을 길 주변에 사흘걸이로 제초제를 쏟아붓는 이는 한겨울 나란히 마을 눈을 쓸던 먼 친척이니. 오래전 함께 한 시간이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공유하진 않는다. 다른 의견은 열등감을 자극하고 맹렬한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어그러질 관계를 유지할 자신도 끝까지 설득할 용기도 없어 한 발 뒤에서 속만 끓인 시간. 무력감이 사람을 멀리 두게 했다.
마을과 떨어진 계곡 안 짧지 않은 길이의 개울만이라도 개나리와 조팝나무, 자귀나무가 우거져 물고기와 새들이 바글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산짐승들이 편안히 내려와 물을 먹고 흰 꼬리 노란 부리의 작은 새들이 와르르 몰려다니는 풍경을 보고 싶었다. 개울 가장자리에 무섭게 번성하는 환삼덩굴과 칡덩굴을 애써 잘라내고 끊어낸 것은 그 바람 때문이었다.
계곡 안을 들락거리는 낯선 이들이 차에서 내려 길을 더 넓혀달라는 민원을 시청에 함께 넣자고 할 때마다, 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부드럽고 친절해질 때마다 저 끈질긴 물욕 앞에 이 작은 개울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이미 개울 아래는 회복될 길이 없고 위쪽에서는 공사 시작을 알리는 흙탕물이 언제라도 쏟아질 수 있는데, 그러나,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개울 돌보는 일을 놓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가재를 보았다.
산산조각 났던 꿈의 조각이 아직은 남아있다고, 당신은 폐허 위에 주저앉은 게 아니라고, 가재가 앙증맞은 집게발로 영차영차 쉬지 않고 물살을 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