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라니.
장화 속으로 조금씩 스며드는 물의 축축함을 느끼면서도 굽힌 허리를 펴지 못했다. 찰랑이는 물에 얼굴을 담그고 물속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제 그리 격렬하게 요동쳤냐는 듯 개울물은 쪼로로록 귀에 익은 소리로 흐르고 있었다. 물살에 밀려 방향이 틀어졌거나 똑바로 선 돌들을 옆으로 누이고 가지런히 밀어 흐트러진 물길을 잡아주는 건 비가 그친 뒤 물이 빠지면 언제나 하는 일이었다. 개울의 수해 복구이고 언제라도 또 올 수 있는 폭우를 대비하는 거였다. 거세게 휘돌아 내려간 계곡물에 바위들은 반들반들 닳아 있었다.
산골의 장맛비가 으레 그렇듯 이번 비도 강하고 길었다. 골짜기마다 골은 깊어지고 흙이 쓸려나가 드러난 돌과 나무의 뿌리는 비어져 나온 산의 관절처럼 앙상했다. 사흘 동안 쏟아진 비 몽둥이를 버티어낸 나무들은 후드둑후드둑 물방울을 떨구었다. 내리꽂히는 햇살은 날카로운데 공기는 여전히 습기를 머금고 후끈거렸다.
개울둑은 두어 군데가 크게 무너졌고 아랫도리가 횅하게 파인 곳이 꽤 여러 곳이었다. 위를 밟으면 그대로 풀썩 내려앉을 허당이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 버텼다. 붙어있는 농토와 개울둑의 운명은 하나다. 개울둑이 무너지면 농토도 유실되고 개울둑이 굳건하면 농토도 안전하다. 그러나 아직 개울둑은 단단해지지 않았다. 한철 자란 풀과 멀리 뻗지 못한 개나리 뿌리로 이 정도 버틴 건 장하다. 손으로 메꿀 수 있는 정도의 피해에 안도했다.
거기 구건데 물이 흘러요?
하천 정비를 문의하니 담당 공무원이 되물었다. ‘구거(溝渠)’란 폭이 좁고 물이 많지 않은 작은 개울을 뜻한다. 공문서에 구거로 기록된 많은 개울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한다.
마른 적 없는걸요. 평소에도 꽤 흐르고요, 장마철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져 양을 감당 못 해요.
개울둑이 무너져 휴경 중인 논으로 물길이 만들어진 지 오래였다. 논을 정비하면서 맞닿아 있는 하천 정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기에 시청에 문의했지만 결과는 자연 도랑복원 사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거였다. 콘크리트 옹벽 같은 일반 방식은 시청에서는 사업비용 때문에 어렵다 하고 우리는 경험상 개울이 높아지지 않으면 지금 상태에서는 매년 보수하느라 비용과 시간을 낭비할 것이 뻔해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했다. 결국 개울은 예전 흐르던 대로 물길만 만들어주는 소박한 방식으로 제 얼굴을 찾았다.
그리고 삼 개월 뒤 첫 장마를 맞았다.
길게 이어진 백여 미터 개울 아래쪽에서부터 시작된 작업이 허리 펴는 횟수를 늘리며 위로 거슬러 올라 십여 미터를 남겨놓고 있었다. 벼랑에 뿌리를 뻗고 늘어진 벚나무 아래 무릎 높이 장화가 잠기도록 물이 깊은 곳. 꽤나 넓은 돌을 밀어 방향을 돌렸는데 손톱만 한 무언가 거무스름한 것이 물속에 동동 떠 있었다. 이번 급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고 버틴 것이 있다고? 놀라 가만히 들여다보니 짙은 갈색의 새끼 민물 가재였다.
가재라니, 가재를 보지 못한 지 꽤 되었고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여서 멸종 위기라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앙증맞은 것이 몸통 양옆에 달린 다리로 바둥바둥 헤엄을 치고 있었다. 놀랍고 대견해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작은 몸짓이 암팡지게 물살을 거슬러 바위 밑을 찾아 들어갔다. 새끼 혼자서는 이번 급류를 버텨내기 힘들었을 테니 어미 가재도 어딘가 돌 밑에 있다는 의미였다.
모든 게 사라진 게 아니었다. 아직 쫓겨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있었다. 묵직해진 허리를 천천히 펴고 푸르디푸른 쨍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재의 아직 작은 집게발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었다. 여물어가는 등껍질이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개울 물길 정리는 멈춰졌고 나는 조용히 몸을 돌려 한 걸음 한 걸음 소리 죽여 개울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