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수필)
의사들은 포기했다. 그러나 우리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장에 좋다는 고구마와 양배추, 늙은 호박을 갈아 먹였다. 그나마 양배추의 효험을 보아 배설을 할 수는 있었지만 제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속에 있는 변이 완전히 빠져나올 리 없었다. 계절마다 엉덩이 끝 불룩해져 울부짖는 녀석을 끌어안고 관장을 해주었다. 몸부림치는 녀석의 이빨에 살점이 뜯겼다. 붕대 묶고 달려간 병원 의사 앞에서 창피함도 모르고 비죽비죽 울어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다 해도 사람보다 더 힘들고 지치는 건 아픈 당사자인 녀석일 터였다.
그렇게 한바탕 법석을 치르고 나면 녀석은 눈을 감고 방석 위에 오래 늘어져 있었다. 곁에 주저앉아 녀석의 등에 손을 얹으면 푸석한 털 아래 마른 등이 가늘게 오르내렸다. 살아 있구나. 손바닥을 밀어 올리는 녀석의 실낱같은 숨결에 결코 먼저 손을 놓지 않겠다, 마음을 다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자, 우리. 그렇게 한 계절 한 계절 넘어 세 해를 왔다.
마음은 급하고 손은 느리다. 톱질한 판자의 길이가 조금씩 어긋난다. 다른 때라면 꺼슬을 밀고 길이를 재서 다시 손을 보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맑은 날이면 아직 훤할 시간, 먹구름 때문에 주위는 어둡고 가는 빗줄기 끊이지 않고 처마 끝에 받쳐놓은 물통으로 쪼르르 쪼르르 떨어진다. 텃밭을 돌아보니 녀석에게 먹이기 위해 심은 고구마 이랑은 풍선 부풀 듯 무성하고 양배추는 튼튼하게 포기를 안아 가는 중이다. 가슴이 먹먹해져 휘적이는 옥수숫대와 섶 위로 목을 들고 있는 오이 넝쿨로 고개를 돌렸다. 빗방울에 휘어지는 커다란 호박잎 아래 노란 꽃 진 자리마다 졸망졸망 매달린 연두 애호박들이 물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시골 개로서 녀석은 오래 살았다. 병원도 제일 많이 다녔고 보살핌을 받을 만큼 받았다. 집안에 있는 새끼 여섯 마리가 모두 녀석의 자손이다. 두세 살 때는 힘이 좋아 그 속도를 산책길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길바닥에 나뒹군 적도 많았다. 녀석의 목줄이 풀렸던 어느 날, 펄쩍이며 뛰어나간 녀석은 아랫집으로 내달았다. 그곳엔 풀어놓고 키우는 개가 있었다. 산책길에 캉캉거리며 따라와 성질을 돋우곤 했는데 뒤돌아 으르렁거리다 목줄 당겨져 억지로 끌려오곤 했던 게 영 분했던가 보다. 벌써 아랫집 빈터에서는 작은 개의 비명 소리가 높은데 나는 인대를 다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절룩거리며 달려갔지만 몸집은 작아도 나이가 훨씬 많고 앙칼진 아랫집 개와 쫓고 쫓기며 뒤엉켜 있는 녀석을 잡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던 목재 트럭 운전기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상황을 듣자 차에서 내려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먼지 뽀얀 곳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싸움을 멈추고 어디로 튄 줄 모르는 녀석을 집 앞 철문 앞에서 만났다. 화 난 티를 안 내려 얼굴에 간사한 미소를 띠고 “복아~.” 이름을 부르며 간식을 손에 쥐고 흔들었지만 녀석은 쓱- 한 번 보고는 흥, 고까짓 것, 하듯 고개를 홱 돌리고 산길로 치달아 올라갔다. 그러고는 두어 시간 만에 고라니를 쫓아 논바닥을 뛰었는지 온 몸에 진흙을 묻히고 돌아왔다. 소원풀이를 하고 해맑은 얼굴로 날듯이 대문을 들어서는 녀석을 보고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원한 물과 사료 가득한 밥그릇을 녀석 앞에 내밀었다. 헤어짐 앞에 겹겹이 쌓인 지난 시간은 생생하고 줄 잇는 추억은 시리고 아프다.
전동드라이버의 드르륵거리는 소리에 따라 나무판자들이 나사로 묶여 단단해진다. 양쪽 벽을 모두 세우니 네모난 공간이 만들어졌다. 가로 76센티미터, 세로 42센티미터, 높이 24센티미터. 한 생명을 담고 갈 그릇. 뚜껑은 두어 달 전 해체한 책장의 남아 있는 옆판으로 하기로 했다. 복슬복슬 한 달 갓 지난 강아지로 와서 열네 해를 함께한 짐승이 누워 갈 배. 녀석이 마음에 들어 할까. 엉성하지만 마음으로 짜인 이 관이 슬픔도 아쉬움도 담아 갈 수 있을까. 내가 짜는 처음이자 마지막 관이 될 목관(木棺). 앞으로 갈 아이들은 이전처럼 천에 감아 묶어 묻어 줄 것이다. 가벼이 갈 수 있게.
나도 언젠가는 저보다 조금 더 큰 관에 누울 것이다. 죽은 몸이 누워 가는 곳. 흙이나 재로 돌아가는 시간 머무는 곳. 쥐었던 모든 것을 놓고 가장 겸손해지는 곳. 작고 소박한 목관 앞에서 오고 가는 생명의 시작과 끝, 머물다 떠나는 우주 속 작은 몸짓들에 대해 생각한다. 티끌들이 만나 짧지 않은 시간 어울렁더울렁 잘 살았다. 힘든 시간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며 여기까지 왔다.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하나이고 하나가 모두이니 너와 나는 흩어졌다 다시 모일 것이다. 거실 창문으로 녀석이 나를 내려다본다.
깊은 곳에서의 울림. 녀석의 마지막 인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