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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유 Sep 18. 2024

죽은 자의 길(1)

뒷산 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친이 위독한데 아무래도 장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며 마을 이장(里長)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화장 후 골분(骨粉)을 뒷산에 안장하려는 것이다. 사업에 실패한 사촌오빠에게서 산을 샀던 노인은 세상을 떠나 뒷산에 묻힌 지 오래다. 그 옆에 모친의 허묘(虛墓, 빈 무덤)를 만들어 놓았던 아들 형제들은 명절 때마다 가족을 이끌고 산소에 오곤 했다. 연세가 어찌 되냐 물으니 백 세라고 했다. 백 세라, 한 세기를 살고 가신다. 그러나 가는 이가 얼마를 살았던지 보내는 자식의 마음은 아릴 터, 조의를 표하고는 이장 전화번호를 확인하여 알려 주겠다 했다.


시골 자신들 소유의 산에 묘를 조성하면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에게 양해를 구하게 된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함께 변한 세태의 영향이다. 몇 년 전 불거진, ‘장의차 통행료 징수 사건’의 영향도 클 터였다.  

충청도 한 마을에서 이장과 주민들이 트럭으로 장의차를 가로막고 통행료 오백만 원을 요구했다. ‘마을 발전 기금’이란 명목이었다. 실랑이가 벌어졌고 장례가 급했던 유족들은 삼백오십만 원을 내고서야 묏자리로 갈 수 있었다. 한여름 황당한 장례 방해를 당한 이들이 청와대에 진정서를 넣으면서 사건이 뒤늦게 공론화되었고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그런 일은 그곳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을 이장과 주민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유족 앞에서 돈을 세고 영수증까지 써 주었다는 건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빈번히 벌어진 일이었다는 거다. 결국 사건의 당사자들은 경찰 조사까지 받아야 했고 해당 지역은 잘못된 장례문화의 악습을 철폐하자는 군민 결의대회까지 열었지만, 관습은 특히 악습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나 보다. 뒷산 임자가 묘를 조성한다는 말이 건너 건너 전해졌는지 이웃에 살고 있는 이가 전화를 했다. 집 바로 뒤에 산소를 만드는데 괜찮냐고, 너네 집이 반대하면 마을의 다른 이들과 의견을 모아 못 만들게 할 수 있다고, 주민들 의견이 모이면 이장도 함께 하기로 했단다. 마을은 열 가구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곳, 언론에 나온 일이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시골에서 마을 길을 막아서는 경우는 다양하다. 거대한 송전탑이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를 반대하기 위해, 가장 마지막에 행하는 항의의 표시가 길을 막는 행위다. 도시 생활을 위한 필수시설임에도 위해(위험) 시설로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인구가 적은 지방에 세워지면서 해당 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소중한 삶의 터전이 깨지고 부서지는 것을 보아야 했다. 충분히 타당한 저항이었고 도시 중심의 국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경우가 아니고 죽은 자의 길을 막고 돈을 요구하였다. 물질적 가치를 앞세운 시대가 잃어버리고 파괴한 것이 무엇인지 날것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통행료 명목으로 내세운 ‘마을 발전 기금’은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 대부분의 마을에 존재한다. 주민들의 복리나 마을 내 소소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금이 이제는 규모가 커진 곳이 많다. 정부의 지원뿐만 아니라 개발 행위를 하는 사업자가 관행적으로 마을에 지불하기도 한다.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목적보다는 민원을 막기 위한 의도가 강하다. 이 돈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회계처리가 되고 감사받고 공개되는 곳이 몇 곳이나 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자치(自治)’라는 이름 아래 외부의 견제와 통제가 없는 집단 내 소수의 전유물이 되는 경우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고 수십 년간 같은 곳에서 살아온 이들은 궁금해도 섣불리 묻지 못한다. 자칫 잘못하면 “나를 못 믿냐?”는 고함과 함께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편 가르기가 되어 동네 전체의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다. 돈이 욕망을 부추기고 욕망이 다시 돈을 부른다. 

장례문화도 빠르게 달라졌다.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埋葬)이 중심이던 시절, 장례 의식은 마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힘 모아 치러내는 큰 행사였다. 사람들은 모여 상복을 짓고 조문객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무덤 자리를 파고 봉분을 다졌다.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로 이주가 늘어나고 공동체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장례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상조 회사들이 생겨났고 이제 대부분의 장례는 낯모르는 이들의 주관하에 치러진다. 

자연스럽게 화장률이 높아져 2021년부터는 90퍼센트를 넘어섰다. 화장해서 봉분을 만들거나 수목장(樹木獎)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봉안시설에 안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높은 산꼭대기나 중턱을 함부로 깎고 상석 외에 둘레석, 혼유석(魂遊石), 향로석(香爐石), 망주석(望柱石)*, 동자석(童子石), 문인석(文人石)까지 세운 넓고 화려한 묘지들로 인해 전 국토의 1퍼센트가 묘지라는 비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벌초를 하거나 묘지를 관리할 후손들이 적어지고 관습과 전통에 구속되지 않는 젊은 세대, 자식들에게 짐을 지워주지 않겠다는 기성세대의 의지가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고령인구는 늘어나고 태어나는 인구는 줄어 이대로 간다면 지금 있는 묘들조차 몇십 년 뒤에는 대부분 무연고 묘지가 될 것이라 하니 남아있는 자들의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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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석은 묘지를 보호하기 위해 주위에 빙 둘러 세우는 돌, 혼유석은 영혼이 나와서 식사를 하거나 놀 수 있게 봉분 앞에 놓는 네모꼴의 돌, 향로석은 향로를 올려놓는 돌, 망주석은 무덤 앞 양옆에 세우는 돌기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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