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변하고 의례는 간소화된다. 세상의 흐름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간소화되고 장례 과정조차 돈을 지불하고 편리함을 얻는 바람에 죽은 자에 대한 추모도, 죽음에 대한 사유도 길게 할 시간이 없어졌다. 서둘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바쁘다. 죽은 자는 빠르게 잊힌다. ‘산 사람은 산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말은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함의를 갖지만 ‘잊힘’에 대한 서글픔이 담겨있다. 죽은 자와 산 자는 언제부터 이렇게 멀어졌을까.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에서는 개인 묘지나 가족 묘지는 ‘20호 이상의 인가 밀집 지역, 학교, 그밖에 공중이 수시로 집합하는 시설 또는 장소로부터 3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종중이나 문중 묘지, 법인 묘지는 이 거리가 500미터로 늘어난다. 장례 방해를 당했던 묘지는 마을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1.5킬로미터 떨어진 산속에 있었다고 한다. 실정법에조차 어긋나지 않는 상황임에도 주민들이 ‘마을 법’이라며 억지를 부린 거지만 어기면 처벌이 따르는 법률 조항에까지 묘지를 조성할 수 있는 거리를 제한했다는 것은 다수의 사람이 죽은 자의 공간을 산 자의 주거 공간과 분리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대부분의 추모시설은 도시 외곽에 세워진다. 도심에, 사람들의 생활반경 가까운 곳에 세워지지 못하는 것은 건립비용의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큰 장애물은 주민들의 반대와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예전엔 산 자의 공간과 죽은 자의 공간이 가까웠다. 밤에 귀신이 나온다고 아이들을 겁주기도 했지만, 밭둑이나 산모롱이에 있는 묘지 앞에서 들에서 일하던 일꾼들은 새참을 먹고 길 가던 이들은 짐을 놓고 땀을 닦고 쉬었다. 친척이나 친구, 자손들이 쉽게 찾아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할미꽃과 제비꽃이 피는 친근한 곳이었다. 죽음은 삶과 멀지 않고 함께 있다고 가만히 속삭여주는 오래된 상징 같은 존재였다.
개울 건넛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는 곳, 옆 동네 사는 이가 만든 아담한 묘가 있었다. 상석(床石)** 하나만 놓여있던 소박한 무덤은 길을 가거나 집안에서 혹은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고개만 들면 볼 수 있었다. 때마다 후손들이 정성 들여 관리한 덕에 잔디가 정갈하고 깔끔했다. 진달래와 철쭉, 벚꽃, 산딸나무, 이팝나무꽃들이 줄지어 피어나던 야트막한 산에 기댄 봉분은 주발을 엎어놓은 것처럼 예뻤다. 함박눈을 소복하게 쓰고 있을 때면 그 봉긋한 모습이 정갈하고 단아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를 떠올리게 했다. 어떤 여성이었을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렇게 그이를 생각하고 추모했다.
아버지의 산소도 뒷산에 있었다. 산이 팔리기 전, 나는 가끔 뒷산에 올라 아버지 산소 앞에 서 있곤 했다. 딱히 할 말이 없는 날도 그냥 서 있었다. 봉분 한 번 보고 뒤돌아 마을을 내려다보다 돌아오곤 했다. 언젠간 죽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삶의 사유가 꼭 죽은 이의 무덤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죽은 자의 공간은 살아있는 자를 겸손하게 한다.
전화한 마을 이웃도 오래전 자신의 어머니를 고향 집 옆에 모셨었다. 비탈진 밭 위에 들어선 무덤은 꽃을 좋아하던 작고 오종종한 여인을 떠올리게 했다. 무덤 속 여인도 자신이 살았던 집과 호미질하던 밭에서 들리는 왁자한 소리에 심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겨운 무덤 주변엔 억새가 무성해 뒷산의 봄꽃과 여름꽃이 진 가을이면 억새꽃이 하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젊은 날엔 동네 상여를 메고 산을 올랐던 이가 “요즘엔 다 그렇다”며 죽은 자의 길을 막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예순 살을 넘겼고 그이도 마찬가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인지라 산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여기저기 높고 낮은 무덤들이 있다. 햇빛과 바람과 비에 풍화되어 자연스럽게 낮아진 무덤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무덤도 많다. 때로 후손의 경제적 상황이 안 좋아졌는지 경매에 부쳐졌다는 현수막이 걸리는 곳도 있고 이장(移葬)되어 푹 파인, 함부로 흩어진 흙더미만 남아있는 쓸쓸한 묏자리도 있다. 간혹 계곡 옆에 화덕을 설치하고 뼈를 태우는 이장 업체 인부들을 만났다. 굴착기 쇠 손에 의해 지하에서 파헤쳐진 무덤, 수십 년 만에 허공에 들리어진 유골. 어떠한 예도 갖추어지지 않은 채 번개탄 불 속에서 재가 되는 이. 계곡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도 뼈 타는 냄새는 끈질기게 따라왔고 살을 내어준 곳을 쉬이 떠나지 못했다.
일주일 뒤, 뒷산을 올랐다.
이제 막 나란히 앉은 흙무덤. 고요하다. 지상의 인연을 하늘에서도 잇고 계시는가. 흰 치마 끝이 떡갈나무 숲에서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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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 앞에 제물을 차리기 위해 놓은 돌로 만든 상. 상돌이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