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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May 30. 2024

아버지, 장미

내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미국 LA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우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얇은 국제우편용 편지지에 빼곡히 적은 아버지의 일상을 눈으로 그릴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양손으로 잔디밭을 집고, 공원에 편히 앉아 있는 스냅사진을 보냈다. 내가 모르는 공간에 앉아 있는 아버지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중소기업에서 30여 년 일하셨다. 경기가 어려웠던 어느 날 회사 대표님이 아버지 손에 하얀 손수건을 쥐여준 적이 있었다. 나와 동생은 대학교 재학 중이었다. 아빠는 이별을 뜻하는 하얀 손수건을 받고, 사장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한번 혹은 여러 번의 위기를 버텼던 아버지는, 정년을 훌쩍 넘긴 70 중반인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얼마전 시댁 가족의 방문 후, 친정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중학생 조카는 어린이티가 벗어졌다.

주꾸미볶음과 피자가 세트로 나오는 퓨전 메뉴라 조카도 어른들도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수술 날짜가 정해졌다.”

아버지의 입에서 암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와 동생, 올케는 동시에

“뭐라고요?” 불에 덴 듯 소리쳤다

가벼운 염증인 줄 알았던 나는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투병 중인 이웃들이 있지만 막상 아버지에게 닥치고 보니, 당사자인 아버지보다 더 큰 충격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평소 농담을 잘하는 아버지는 며칠 잠을 못 잔 듯 피곤한 얼굴로 말씀을 이어갔다.

"의사가 심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해. 수술 날 조직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한다."

크게 한 방 먹고 나니, 다음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일까.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충격 흡수 및 회복이 더딘 엄마. 우울증이 심해지지 않을까.     

나와 강릉에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이 아버지의 메신저 프로필에 걸려있다.

엄마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흰 손수건을 받았던 회사에 충성을 다하느라 몇 해 전까지, 주말 출근을 불사했다.

푸른 동해에서 첨벙첨벙 어린아이처럼 수영하던 아버지.

"아버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선크림도 안 바르고 수영하시면 피부 다 벗겨져요."

약사 아저씨는 아버지를 나무라듯 약을 지었다. 등과 팔이 까맣게 변하다 못해 하얗게 꺼풀이 벗겨지는 아빠 피부를 보며.     


사노 요코라는 일본 작가가 말했다. ‘'암'은 좋은 병이다. 사람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망고 같은 과일을 사 온다. 애연가도 담배를 뚝 끊어 버린다지. 흥, 목숨이 그렇게 아까운가’라고.

나는 시크하지 못하기에, 마음에 발이 달린 듯 동동거리며 인터넷을 검색했다. 교회 성도님들께 기도를 부탁했다. 병은 알리라고 들었다.     

"장미원에 갈까요?"

아버지가 섹스폰 연주를 즐기는 낭만주의자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아버지는 학비를 내주고, 고장 난 전자제품을 수리하고, 엄마를 돌보는 존재였다. 바다처럼 푸르게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아버지는 황석영의 '장길산 시리즈',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나관중의 '삼국지' 그리고 시내암의 '수호지'를 책장에 두었다. 내가 소설을 읽게 된 계기였다.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영어, 일본어를 적은 노트를 보여줄 때, 외국어를 처음 접했다.     

"그래. 주소 찍어"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타닥타닥 입력하고, 안산 노적봉 장미원으로 차를 몰았다.   

  

'찰칵! 찰칵!'

공원에 오니 단체로 온 요양원 어르신들이 꽃잎을 만지며 향기를 맡고 있다. 장난감 자동차를 탄 아이도 신나게 화단 사이를 운전한다. 흰색 털 뭉치 같은 강아지도 장미길을 킁킁거린다. 젊은 커플, 노부부도 장미 덩굴 앞에서 미소 지으며 꿀 뚝뚝.

"엄마가 꽃인데 뭘!"

빨간 장미 사이로 미소 짓는 노년의 어머님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중년의 딸.     

장미 덩굴 옆에 아버지가 서 있다. 작품 사진을 찍는 듯 집중하는 모습. 어머니는 아버지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부모님이 나를 잘 모른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부모님께 다 이야기하지 못하면서부터. 걱정거리는 거른다.

부모님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이 무엇일지.     

아버지의 병과 무관하게 일상은 흘러간다.

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인 나. 장미의 꽃말은 기말고사이다. 가족 행사가 많았던 5월 지출을 계산한다. 독일어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과 소통한다. 쓰는 일도 멈출 수 없다.     

소름 끼치게 무심히 굴러가는 일상 가운데 잠시 벤치를 내어준 장미.

덕분에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만났다. 생의 아름다움을 찾는 아버지. 오래도록 장미를 카메라에 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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