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따라서 독서 없이 글을 잘 쓸 수 없으며, 글을 잘 쓰는 사람치고 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그랬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처음 접한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유명한 책이어서, 책장에 고이 꽂아두었다. 올해 편입한 문예창작학과에서 글쓰기 필독서로 추천되니 대단한 책이다. 이 책은 1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이 출간되어 절찬리 판매 중이다. 책을 최근에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여러 종류의 글을 쓰다 보니 궁금해졌다. 글쓰기의 정도가 있을까?
존경할 수 있는 대통령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인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의 권력이 큰 나라에서 더욱 그렇다. 가장 높은 자리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대통령. 그의 의도를 글로 쓴 저자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강원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대통령의 연설문을 써냈다. 두 대통령은 미래 예측 도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앨빈 토플러, 피커 드러커, 존 나이스비트의 책을 그리고 노 대통령은 앤서니 기든스, 폴 크루그먼, 제러미 리프킨의 책을 애독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 미래를 공부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나는 책을 속독하는 편인데, 장단점이 있다. 빠른 시간에 책을 독파하면,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 욕심과 호기심 덕이다. 여러 책을 동시에 읽을 때도 있다. 그러나 정독할 때와 달리 책 곳곳에 숨겨진 지혜를 빠뜨릴 때가 있다. 김 대통령은 정독하며 판단 과정이 필요하고, 저자 또는 선인들의 생각을 넓고 깊게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책에는 글쓰기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글쓰기를 못 하는 심리적인 요인 그리고 글의 시작과 구성, 표현, 기조, 맺음말, 퇴고에 이르기까지 술술 읽다 보면, 저자의 경험이 살이 되고 피가 된 느낌이다.
다독 다작 다상량 송나라 구양수의 말이라고 한다. 불꽃 튀는 창조력은 어느 순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죽을힘을 다해 몰입해야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쓴다고. 절박함이 결과물을 만드는 것 같다. 안 되는 글을 붙잡고 끙끙거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잠시 산책을 다녀온 후, 시간이 흘러 안 보이는 것이 보일 때 다시 쓰는 것도 방법이다.
내 경우, 글의 구조가 제일 어렵다. 첫째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둘째 하고자 하는 이야기 간의 분량 안배를 위해서, 셋째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누락되지 않도록 넷째 앞에 나온 얘기가 중복되지 않도록 다섯째, 전체적인 통일성과 일관성 유지하기 위해 조립도가 필요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용두사미가 되거나, 이게 무슨 소리야 라며 바람 빠진 타이어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머리말-진술부-논증부-맺음말 4단계 배열법을 권했다고 한다.
글쓰기의 최대의 적은 횡설수설이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최대한 담백하고 담담하게 서술하자. 글에 진심을 담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직장 생활 시절, 말보다 글(이메일이나 문자)로 지시나 결정 사항을 전달받을 때, 망치로 맞는 것처럼 힘이 셌다. 보이지 않는 상상력까지 동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책을 썼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을 향한 짝사랑의 연서라고도 했다. 이 책은 문학적 글쓰기보단 실용적 글쓰기 특별히 연설문에 대한 글이다. 내가 연설문을 쓰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글쓰기 기본을 다룬다고 느꼈다. 머리로 알고 있는 정보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존경한 두 대통령을 만났던 저자의 행복감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끝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적는다.
제가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대와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되었다고, 위험이 예상된다고 포기할 수 있는 목표가 결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