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문학상을 받게 된 데에는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고 한국 문학과 함께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 문학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그의 수상소감에 가슴이 뛰었다.
박완서, 양귀자,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등등 2~30대 나 자신과 부대끼며 탈출구를 찾을 때 작은 쉼터가 되어준 한국 여성 작가들.
아직 한강의 작품을 읽진 못했지만, 한국 문학을 읽고 자란 동시대 한국 작가가 노벨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었다니, 가슴이 뭉클했다. 난 읽을 책 목록에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가가 추천한 최신작 ‘이별하지 않는다’를 올려놓았다.
서점은 그의 책으로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고, 모 인터넷 서점 주가는 고점을 찍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나의일처럼 황홀하다. 음지에서 자란 문학이 금의환향한 것처럼. 문학이 이렇게 환대받는 모양이 낯설고 기쁘다.
문학을 해서 큰돈을 벌긴 힘들다. 아무것도 억압하지 않는다. 창작은 자유가 필요하다. 보이는 것, 소유한 물질, 숫자들에 둘러싸여 우리의 내면을 볼 기회를 잃는 것 아닐까. 수치화된 무언가에 기대,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망각하는 것이 아닐지.
문학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삶을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우리가 평생 마주치지 못할 수 있는 타인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 신학, 예술….
요즘같이 물질과 자본이 득세하는 시대에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문학, 나아가 인문학이 필요한 것 아닐까.
아침에 눈을 뜨면, 쳇바퀴 같은 일상에 한숨을 쉬고, 벌이와 씀씀이를 계산하며, 가끔 텔레비전 화면 속 화려한 장면과 인물에 눈을 빼앗긴다.
문예창작학과 과제가 달리 보인다. 담백한 문체로 에세이 쓰기, 떠오르는 단어로 자유 연상 글쓰기, 기승전결 짜보기, 동화의 줄거리 만들기, 인물의 나이, 습관, 직업, 외모 연상하기.
창작은 행복이라며 창작 욕구에 불 지피는 교수님, 학우들과 공부하는 환경이, 내게 세상과 연결된 끈 같은 것이 아닐까. 나의 욕망, 상처, 기쁨, 슬픔에만 정통한 한 인간이 문학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글쓰기를 통해 억압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 아침에 눈뜨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매일 하얀 백지에 이야기 씨앗을 심어, 언젠가 여물어질 글을 기대해 본다.
한강 작가가 한국 문학의 토양에서 꽃을 피워낸 것처럼.
평론가 김현의 문학에 소회를 끝으로 적는다.
남은 인생 내내 나에게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신 어머니, 이제 당신께 나 나름의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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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