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를 읽고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RHK)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 떠올랐다. 스토너의 고향을 묘사한 걸 읽었을 때. 그의 부모가 농가 일을 하는 것. 외아들 스토너를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사는 모습들을 그리며.
스토너가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여 교수가 되는 과정은 가슴이 시원했다. 농학으로 입학했던 스토너는 문학과 사랑에 빠졌고, 슬론 교수는 그걸 알아챈다. 후에 스토너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고구마를 얹히게 했지만.
스토너는 이디스와 연인이 된다. 이후 윌리엄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한여름 밤의 꿈처럼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그가 단 한 달 만에 잘못된 결혼이라는 걸 알아채고, 그는 사랑을 연기하는 아내를 찾는 비참한 운명에 놓인다.
학교에서는 교활한 학생 찰스 워커 때문에 함정에 빠진다.
이 소설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의 삶이 점차 이상한 늪에 빠지는 과정을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스토너처럼 자신이 지닌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현실과 타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엘린 코트의 시‘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에서 ‘일어나야 할 일들은 일어날 것이고, 그 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스토너는 위험을 감지하면서 워커에게 F를 주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아내가 아이를 낳는다고 할 때도 막지 않았다. 그는 일어날 일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일까.
많이 애쓰고, 노력하면서, 두려움을 없애고자 하지만, 결국 마침표를 향해 가는 삶.
이 책을 읽은 후 가끔 살이 시리게 외로운 날, 스토너가 견뎠던 차가운 겨울이 떠올랐다. 그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지나간다....
<발췌>
이렇게 해서 스토너는 처음 시작한 곳에서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키가 크고, 깡마르고, 구부정한 소년의 모습으로 자신을 지금의 이 길로 이끌어준 강의에 귀를 기울이던 바로 그 강의실에서 키가 크고, 깡마르고, 구부정한 남자의 모습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대학에 워낙 단단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 대학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직무능력이 점점 뒷걸음질 치는데도 아무도 감히 용기를 내서 그에게 정년퇴직을 요구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기억력을 거의 모두 잃어버려서 어떤 때는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제시 홀 복도에서 길을 잃어 아이처럼 남의 손에 이끌려 방을 찾아가야 했다.
추운 현관홀에서 거실로 들어서자 온기가 훅 끼쳐와서 마치 그를 억지로 밀어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문을 여는 바람에 새로 나온, 사람들이 느릿느릿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순간적으로 확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지만, 곧 그의 귀가 그 소리에 익숙해졌다.
뒷방에서 사납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또한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확신했다.
자동차, 행인, 마차 등이 저 아래의 좁은 거리를 기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