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 직장 동료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예쁜 포장지로 감싼 선물 상자를 열어보니 성서였다. 오랜만에 보는 성서가 무척 반가웠다. 본능적으로 새 책에서 나는 향기를 좋아해 갓 내린 커피 향을 맡듯 잠시동안 성서의 향기를 음미했다. 그리고 성서와 나의 추억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성서를 처음 접한 곳은 학창 시절 유학 간 미국이었다. 고모와 삼촌들이 사시는 미국에 도착했을 때 교회 권사인 둘째 고모는 성서를 손에 쥐고 친척들 앞에서 나를 위한 기도를 하셨다.
'사랑하는 우리 조카가 하루빨리 술, 담배를 끊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게 해 주십시오. 아멘!'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이 났다. 불자이신 어머니는 미국 가서 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그중에 하나가 교회 다니지 말 것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모 네 분과 삼촌 두 분,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인 점을 고려해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회를 가야 한다.
처음엔 고모와 삼촌들을 따라 한국 교회를 다녔다. 고모의 권유로 성가대 회원이 되어 찬양가를 열심히 불렀다. 영어 배우려고 미국에 왔는데 이러다간 한국 교회에서 한국말 설교만 듣다가 귀국할 것 같았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아르바이트를 하는 빨래방에서 손님으로 온 내 또래 백인 남자를 알게 되었다.
랍 ( ROB ) 은 백인 남자치곤 키가 좀 작았는데 일찍 결혼해서 한 날은 아내를 데리고 빨래방에 왔었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예쁜 백인 여자였다. 영어를 잘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대답대신 자꾸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모습이 그들 눈에는 내가 착한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신혼인 이들 부부의 초대로 백인들이 사는 집을 처음 구경할 수 있었다.
이후로 매주 랍의 집에 놀러 갔는데, 랍의 친구와 인디언 아내, 랍 부부와 함께 성서 공부를 했다. 랍은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교회 전도사 일도 함께 했다. 영어로 쓰인 성서 공부는 정말 재미있었다. 랍이 매튜, 마크 절에 나오는 구절을 암송할 때는 나는 성서를 보며 그의 암기 실력에 감탄을 하곤 했다.
우리는 함께 미국 교회를 다녔고 스케줄을 서로 맞춰 온 산을 누비며 서바이벌 게임을 즐겼다. 세월이 흘러 귀국할 때 랍은 자기 이름이 적힌 성서를 나에게 선물했다. 가끔 이 성서를 보며 그때의 추억 속에 빠져들곤 하였는데 한동안 이 성서를 잊고 살았다.
직장 동료가 선물해 준 성서를 펼쳐 보았다. 로마서에 나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윤회와 환생을 거듭하여도 새기고 싶은 예수님 말씀이다.
요즘 불교, 기독교 등 종교가 타락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나 역시 종교인 관련 불미스러운 기사를 접할 때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그런데 현자는 상대방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은 모두 자신 내부의 감정이나 생각, 이른바 투사 ( 投射 ) 이므로 상대방을 탓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성서를 꼭 한번 다 읽어볼 생각이다. 첫 번째 성서를 선물해 준 랍 부부를 떠올리며 읽을 것이고 두 번째 성서를 선물해 준 직장 동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읽을 것이다.
사진 by 해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