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생일을 함께 보내려고 근무지 청주를 떠나 서울로 향했다. 추석 연휴기간 출근으로 못 쉬었던 3일에 대한 대체 휴무를 회사에 신청했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바쁜 휴일에 근무하고 다른 날에 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좋은 곳에서 생일 밥을 먹자는 남편의 몇 차례 권유에도 아내는 남대문시장의 갈치조림골목을 가자고 했다. 갈치조림도 먹고 남대문시장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싶단다. 코로나 유행 이전에 가끔 아내와 함께 갔었던 곳이다. 평일인데도 남대문시장은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갈치조림골목에는 양갈래로 줄을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부부도 비교적 줄이 짧은 한 곳을 골라 줄을 섰다.
오래지 않아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갈치조림과 생선 모둠구이를 주문했다. 갈치조림을 맛있게 먹는 아내가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한편 생일인데 좁은 골목식당에서 생일 밥을 먹이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식당 문전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우리는 마냥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대문시장의 상가를 둘러보는데 날씨가 많이 더웠다. 청주보다 서울이 추울 줄 알았는데, 역시 날씨 변화는 아무도 모른다. 찻집에서 찬 음료를 마신 뒤 딸아이가 자취하는 회기역으로 출발했다. 얼마 전에 취직한 딸아이와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지난달 내 생일에 우리 세 식구 다 같이 봤는데, 생각해 보니 한 달에 한번 즈음 이렇게 보는 것 같다.
딸아이가 추천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퓨전 식당이었는데 대학교 근처라서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주 고객이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딸아이의 얘기를 우리 부부는 가만히 들었다. 부모의 인생은 자식 인생을 포함한 인생이라는 모 드라마의 대사가 떠오른다. 자식은 죽었다 깨어나도 부모 인생을 알 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도.
다음날 새벽께, 혼자 산속 깊숙이 있는 골프장을 갔다. 오는 순서대로 모르는 사람들과 한 조를 이뤄 라운딩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배정받은 조는 4명 모두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보통 이럴 경우 재야의 고수들일 확률이 높다. 너무 못 쳐도 민폐를 끼치기 때문에 신경을 좀 써야 한다. 라운딩 도중에 가을비를 만났다. 단풍이 든 나무 위로 소낙비가 그림같이 내렸는데, 이때다 싶어 골프채를 내려놓고 연신 스마트폰 셔터를 눌렀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 함께하기 이틀째로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기로 했다. 대학로 역시 남대문시장 갈치조림골목처럼 코로나 유행 이전에 아내와 함께 틈나는 대로 왔었다. 공연 시간이 한 시간 즈음 남아 아내가 이끄는 대로 유명한 학림다방을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평일인데도 앉을자리가 없었다. 맞은편 대로변에 있는 커피숍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이층에 앉아 열린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까 커다란 플라타너스와 눈높이를 같이했다. 청주 가로수 길에 있는 플라타너스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얼추 3년 만에 보는 연극이었다. 남자 배우 3명이 출연하는 '늘근도둑 이야기'이다. 100 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하는데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배우들의 사회 풍자와 코믹스러운 연기도 볼만했지만 간간히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과 요청 내용들 때문에 잠시라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저 긴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웠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가을 소낙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 부부는 오늘 본 연극 얘기도 하고 다음번에는 '여행스케치'처럼 추억이 담긴 그룹이 공연하는 콘서트에 가자는 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집 근처 코노를 들렀다. 들어서자마자 각 방에서 열창하는 노래들로 왁자지껄했다. 비어 있는 방 한 칸을 간신히 발견했다.
오랜만에 듣는 아내의 노래다. 아내는 가수 이문세 노래를 좋아한다. '사랑은 늘 도망가'를 부르는 아내를 보는데, 세월이 흘러도 아내의 소녀 감성은 여전한 것 같다. 훗날 버스킹을 대비해 연습은 실전같이.
사진 by 인프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