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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화를 만났다

나in나 essay 21

by 나in나


물조리개에 물을 득 채고 베란다 식물들을 샤워시킨다. 얼마만의 여유로움인가. 4월의 봄은 시작됐지만 새잎 올리지 못하고 생기를 찾지 못한 식물들게 영양제 뿌려 준다.


려 식물을 키운 탓일까. 간혹 여기저기 버려지는 식물 보면 동정심이 솟구친다. 완전히 생명을 다하지 않음에도 버림받은 그 처지를 생각한다. 아프고 병들었더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보이는 식물이 보이면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돌보도 한다. 그러다 보니 베란다에 식물은 점점 늘어났고 작은 정원이 었다.



가을이었다. 숲으로 향하는 둘레길에 종종 식물들이 버려진다. 거주지와 거리가 있는 이곳까지 이 찾아와 식물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기막힌 것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식물을 내팽개쳐 버다. 수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관리가 어려워서, 병에 걸려서, 너무 커져서 등등 들이 버리는 이유는 다양할 테지만 이곳에 내던져진 식물들은 곧 죽게 된다는 같은 처지에 놓여있이 안타까웠다.

겨울을 앞두고 버려진 식물들

미 만석이 되어버린 베란다 정원 이 식물들을 전부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도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지 간혹 나처럼 버려진 식물을 데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에서 말라죽기 전에 좋은 주인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찬히 살펴보았다. 노지 월동이 가능해 보이는 식물이 에 띄었다. 그 식물이라도 살려보자며 주변 흙에 심기로 했다. 숲으로 가던 중이라 모종삽도 없고 흙을 파낼 도구가 없어서 신고 있던 등산화 앞코로 흙을 긁어 파고 또 팠다. 등산 후 오전 일정을 맞추려면 빠듯한 시간인데 이미 등산은 포기라도 한 것처럼 열심이었다. 얼마나 팠을까. 뿌리를 잡고 있던 흙덩이를 깊이 넣고 주변 흙을 끌어 모아 로 꾹꾹 러 심었다. 조만간 비 소식이 있으니 그때까지는 뿌리를 잡고 있는 흙의 수분과 땅속의 습기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흙 파내고 식물 심느라 수고한 등산화의 앞코

다행히 예상이 적중했다. 한두 차례 지나간 비를 맞으며 뿌리가 자리 잡았는지 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작 임에도 은은하고 진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곳에 심 두어서 죽을 면했나 싶은 생각에 뿌듯했다. 본래도 예쁜 꽃이지만 내 눈에는 훨씬 더 아름답게 빛나 보였다. 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식물의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있었다. 단정화였다. 숲을 오가며 마주칠 때마다 건강해져서 다행이라며, 꽃까지 피우다니 정말 대견하다며 인사를 눴다.

(사진 하단 좌측) 버려진 식물을 심어두었다. 한참 후에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반가워 사진에 담았다.

을이 지났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낮은 기온도 문제가 되었지만 비가 내리지 않아 줄기와 잎이 말라가고 있었다. 간 간신히 살아났나 싶었는데 한번 피어보지 못한 꽃울들이 말라있었다. 물만 줄 수 있었어도 예쁜 꽃 가득 달고 살아있음에 행복해했을 식물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작고 작 새로 올라오던 초록 잎들도 말라갔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생기를 잃고 있었다. 그러다 죽을 것만 같아 망설졌다.




줄기 끝에 수분이 닿지 않아 잎이 말라 있다. 집으로 데려와 화분에 심는 사진이다.

한참을 고민 끝에 집으로 데려가 베란다에서 물시중 잘 들어 겨울을 나기로 결정했다. 의도치 않게 꾸만 달라지는 환경에 적응하기도 버거울 텐데 줄기까지 잘라내면 더 아프고 힘들까 봐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겨울을 나기로 했다. 눈에 띄는 생장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다. 마른 줄기를 그대로 둔 채 새잎 올리는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 집으로 데려오던 날 얇은 가지 2개가 짧게 잘렸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워 흙에 꽂아두고 꾸준히 물을 주면서 뿌리를 내리는지 번식 가능한지 지켜보고 있다. 2개의 줄기가 베란다 정원의 환경에 적응하여 번식이 가능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만일 번식이 성공하면 모체가 건강을 되찾았을 때 가지치기를 감행려고 한다.




득 채운 물조리개를 들어 올려 시원하게 물 주고 영양제를 뿌려 주면서 모체를 살다. 구석구석 새잎을 하나둘 올리기 시작한다. 쌀알보다도 작은 초록 잎이 여기저기 돋아 나는 것이 렇게 기쁘고 반가울 줄이야! 화분 흙에서 뿌리를 잘 내리고 베란다 환경에 적응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숲 둘레길에 심어진 후 비 맞으며 뿌리내려 피워 낸 꽃 사진이다.

식물을 키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작은 식물을 정성껏 돌보며 대품으로 키워내는 그 과정의 기쁨을. 아픈 식물을 돌보아 건강해지는 그 기쁨을. 숲길에서 환하게 꽃 피운 것처럼 우리 집 베란다 정원에서 아름답게 꽃 피운 상상을 한다. 벌써 코끝에 향기가 전해지는 듯 설렘이 느껴진다.

■ 식물 이름: 단정화, 항정목, 유월설, 야정향

■특징: 잎이 작고 가장자리에 흰색 띠를 두르고 있다. 작은 꽃이 3월~8월까지 계속 핀다. 환경이 맞으면 상시 꽃을 피운다. 서식 환경이 좋으면 늦가을이나 이른 봄에도 피어 있는 꽃을 볼 수 있다. 꽃은 연분홍색 바탕에 연한 보라색 테두리가 있다. 새순 가지는 보라색이다.

■옛날부터 고가댁 마당에서 몇 포기씩 기르던 나무로 꽃이 오래가며 은은한 향기가 난다.

■상록 활엽관목으로 높이 70~100cm 정도까지 자란다. 중국 남부가 원산이며 중국남부, 대만 등지가 자생지이다.

■키우는 방법
햇볕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에서 키운다. 물을 좋아한다, 물이 부족하면 금세 잎이 진다. 노지 가능한 야생화이지만 겨울에 냉혹한 추위를 겪으면 잎을 모두 떨군다. 잘 보온해 주면 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다. 적정 온도와 물 등의 조건이 좋으면 길게 늘어지듯 가지를 뻗는다. 단정화는 새로운 가지에서 꽃을 피운다. 끝 부분의 가지를 잘라 주어 새 순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풍성하게 줄기를 내고 꽃을 피울 수 있는 수형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다.

■번식 방법: 꺾꽂이, 포기나누기

※ 단정화와 백정화는 비슷하여 혼동하기 쉬운 품종이다. 단정화는 하얀색 꽃을 피우고 백정화는 핑크색빛이 도는 하얀 꽃을 피운다.
단정화는 잎 가장자리에 흰색테두리가 있고 백정화는 잎 가운데에도 흰색테두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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