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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품

나in나 essay 32

by 나in나


내가 나고 자란 가정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침묵과 적막이 먼저 떠오른다. 포근하거나 따뜻하기보다는, 조용하고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가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건 아마도 그들을 키워낸 사랑이 따뜻했고 가정의 분위기가 포근했기 때문일 테다.

나는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버스 한 대 다니지 않는 외진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어릴 적 살던 집은 대청마루가 있는 아궁이에 불을 때고 가마솥에 밥을 지어 굴뚝으로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넓은 앞마당과 외양간이 있었다. 장독대와 사과나무, 배 나무, 포도나무, 딸기까지 풍성함이 넘치는 뒤뜰을 얕은 담장이 모두 끌어안은 정겨움이 있었다. 모두가 농사지으며 사는 시골 마을에서는 평범했고, 특별할 것 없었다. 어린 나에게 내가 기댈 수 있고 나를 보호해 주는 꼭 필요한 공간이었다. 산과 들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간 나를 어둠과 추위로부터 지켜주었다. 그런 든든함이 좋았다.

반면 가정 분위기는 달랐다. 아버지는 과묵하셨고 어머니는 침묵하셨다. 어린 나의 눈에도 과묵과 침묵의 차이가 보였다. 부모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날은 흔치 않았다. 아버지의 과묵함과 어머니의 침묵 뒤에 갑작스럽게 드러나는 또 다른 얼굴들이 나는 무서웠다. 과묵과 침묵을 보며 느끼고 배웠다. 누가 말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바빴던 부모님은 (시간도 부족했지만 체력도 부족했을 테니) 나를 살피고 참견할 여력이 없었다. 스스로 알아서 잘해야 했던 시골 아이였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뒤뜰, 비닐하우스, 밭을 찾아가 양껏 먹기도 하는... 나의 유년은 꽤 자유로웠고 있는 그대로의 내가 허락된 시절이기도 했다. 나의 유년에 풍성한 배경이 되어 주었다. 나름 행복했던 그날들에 끝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어느 날 하교 후,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따라 낯선 도시로 떠나 왔다. 그리울 고향, 그리울 친구, 그리울 학교를 두고. 앞마당도 없고, 뒤뜰도 없는, 황토 흙길을 더 이상 밟을 수 없는 곳이었다. 낯선 도시의 새로운 터전은 더 적막했다. 내가 자는 시간에 출근하시고 내가 자는 시간에 퇴근하셨던 엄마의 얼굴은 매일 볼 수 없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낯선 도시는 분주하고 시끄러웠다. 도시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사는 듯 보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텅 빈 공간에서 조용히 밤을 맞던 그날들은 내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더 절실히 느끼게 했다.


침묵과 적막을 깨뜨리거나, 조용하지 않으면 뭔가 모르게 불편해지고 어색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침묵이 밉지 않았다. 적막과 침묵이라고 하면 대부분 외로움과 고독을 함께 떠올린다. 하지만 나를 성장하게 한 가정의 분위기, 적막과 침묵은 달랐다. 말하지 않는 침묵은 깊은 울림이 있었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했다. 적막과 침묵은 지치거나 들뜬 감정, 불안하거나 즐거운 마음도 조용히 사그라들게 했다. 나와 하루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그런 가정 안에서 조금 더 온전한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저 나라는 그 자체로 숨 쉬게 해 준 공간이었다. 오히려 그곳에서 나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느껴지는 마음, 바깥세상에서는 배울 수 없는 감각들. 어쩌면 말 없는 공간이기에, 나는 내 안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침묵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감싸 주었다. 침묵은 때때로 가장 확실한 존재의 방식이었다. 쓸쓸함을 받아들이게 하고, 고요 속에서 스스로를 마주하게 했다. 나는 조용한 방 안에서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나의 하루를 스스로 어루만지는 법을 배웠다. 가정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나를 품어주는 울타리였다. 말없이 우리 가족을 지켜주고 품어주고, 갈 곳 잃어 헤매지 않도록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든든한 종착지였다. 종착지라는 말은 왠지 슬프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끝이 아니라, 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도착한 안식처와 같은 의미다. 그런 가정의 품이 나는 좋았다.

부모님 품을 떠나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하루를 버텨낸 내 마음이 조용히 머무는 곳. 바쁜 세상 끝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공간. 그 안에 누군가가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누군가가 없더라도 나는 그 집에서 쉴 수 있다. 오늘을 살아낸 내 마음이 쉴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가정이 되어준다. 말없이 품을 내어주는 가족과 같은 존재다. 가정에 의미와 조건이 있어야 한다면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가정이란 결국 누구와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나 자신이 어떤 상태로 머무는가가 더 중요하다. 소란함보다 조용한 숨결, 말보다 지켜주는 침묵, 그리고 그 안에서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존재.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가정이고, 지금도 믿는 가정의 의미요 조건이다.

우리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품이 있다는 것으로도, 하루의 버거움을 훌훌 털어버리자고 마음먹고, 또 하루를 더 살아보자며 힘을 내게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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