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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큼 Sep 14. 2023

외지인에서 현지인으로 살아가기

강릉살이 5년 차 현지인

 강릉 산골에서 살던 6남매 중 맏딸인 엄마는 스물세 살 아빠와 중매로 만나 결혼을 했다. 아빠 역시 강릉 사천에서 태어나서 스무 살이 넘어 서울로 와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맏딸의 무게, 시골 촌구석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나이차도 적지 않은 아빠와의 만남 세 번째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당장 산골에서 벗어나 서울, 도시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아빠와의 결혼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강릉에서 살아왔던 기간보다 서울에서 지낸 기간이 훨씬 긴데 엄마는 여전히 강릉사투리의 억양이 강하다.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엄마는 강원도 사람이라는 걸 단번에 들키기도 하고, 강원도 사투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중국사람 혹은 북에서 왔냐고 의심을 받기도 했다. 서울에서 강릉 친구들을 만날 때는 그 사투리가 더욱 심해지는데, 그 대화를 처음 듣는 서울 사람들은  강릉말을 서울말로 통역해 줘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엄마는 40여 년 동안 서울에서 강릉사투리를 쓰는 외지인으로 살고 있다.


 5년 전, 서울을 떠나 온 우리는 강릉에 사는 외지인이 되었다. 낯설지 않은 강릉 말투이지만 서울말을 쓰는 우리에게 강릉 사람들은 곁을 잘 내어주지 않았다. 본가가 강릉이고 본적이 사천이라는 말로 나도 강릉 사람이라고 어필해 보지만 그들에게 우리는 서울 사람이었다. 엄마도 우리처럼 항상 외로운 마음이 있었겠지. 남편은 가끔 말도 안 되는 강릉 사투리 억양을 써서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우리 엄마가 서울말투를 쓸 때 느껴지는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모임을 나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우리 같이 다른 지방에서 이사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릉으로 여행을 다니다가 바다 앞 산책을 매일 하며 살고 싶어서 사업 다 그만두고 무작정 이사 온 가족, 서울의 미세먼지가 지긋지긋해서 동쪽으로 온 가족, 강릉으로 발령 나서 어쩔 수 없이 왔다가 다시 서울로 가기 싫어서 정착한 가족 등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 다행히 그들과 관계를 맺고 공감하고 위로하며 외지인에서 서울말을 쓰는 강릉 현지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강릉 현지인 추천 맛집, 이제 강릉 맛집을 추천해 줄 수 있는 강릉 현지인이 이제 나다:)

솔밭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강릉 현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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