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에서 임대인으로
남편과 계약서에 사인하고, 계약금을 내고 난 후 우리는 건물을 샀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계약 전 너무 비싸서 못 사겠다고, 돈이 모자라다고 주인아저씨한테 말했더니, 건물 가격은 깎아주지 않았지만 이 건물을 꼭 우리에게 팔고 싶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왔다. 사주 탓을 하며 올해는 사지 않겠다고 했더니, 해가 지나자마자 계약서를 가져와서 사인하자고 내밀었다. 건물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일 년을 넘게 건물에서 가게를 하며 보았기에 건물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전 건물주 부부의 이혼 탓이었다. 아저씨 명의의 건물에 아줌마가 살고 있었고, 아저씨는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고 했다. 딸의 결혼과 동시에 그들은 이혼한다고 했다. 아저씨는 얼른 건물을 팔아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돈은 없지만 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우리들을 놓칠 리 없었다. 우리는 아저씨가 가져온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원만한 합의는 못했지만 뭐에 홀린 듯 계약금을 보냈다. 아저씨는 계약서를 주며 아줌마에게는 매매가격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우스운가. 왜 그런 걸 당부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매매가격을 알 수 있는 루트는 많았다. 부동산 사이트에 올려진 가격도 있었고, 곧 부동산 실거래가 사이트에도 올라갈 건데 아저씨는 우리만 얘기 안 하면 된다고 했다.
계약서에 사인한 후부터 우리는 한숨을 쉬는 날이 잦았다. 위층에 우리가 살 집도 엉망이었다.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월세 안 낼 생각만 했지, 집 공사비, 대출이자 등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우리가 미친 게 아니었는지, 잘한 게 맞는지, 물릴 수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물리는 게 맞지 않냐며 남편과 매일을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아줌마가 건물의 매매가격을 알려달라고 했다. 아저씨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려고 했는데, 아줌마가 매매 계약서를 가져와서 이게 맞냐고 물어보았다. 우리가 가진 매매계약서와 아줌마가 가지고 있는 매매계약서가 달랐다. 우리의 이름, 주민등록번호는 확실한데 사인 대신 우리의 도장이 찍혀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문서 위조였다. 아줌마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나서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을 신청했고,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건물을 못 사는 것은 아쉽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 계약 파기돼서 계약금이나 두 배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저씨와 아줌마는 극적인 해결을 했고,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모든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퇴직금, 우리의 첫 커플링인 순금 반지와 아이들의 백일반지, 돌반지 등 돈 되는 것은 다 팔아서 중도금과 잔금을 해결했다. 담당 은행직원은 이렇게 많은 대출 서류에 사인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지만, 그래도 잘 한 선택이라고 우리를 응원해 주셨다.
마흔 살, 소도시 낡은 5층 건물의 건물주가 되었다.
계약서에 사인한 순간부터 잔금을 치르고, 아줌마가 이사 나가는 순간까지의 4개월의 시간이 4년 같이 길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우리 집이 생겼다.
우리는 월세 대신 대출이자를 내는 건물의 임차인에서 임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