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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큼 Aug 31. 2023

건물주가 되었다 1

겁대가리 없이 계약서에 사인

남편 가게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10km. 차 타고 15분 거리였다. 처음 이사 올 때, 너무 먼 곳에 집을 얻는 거 아니냐고 하는 이모의 말에 ‘15분 거리가 뭐가 멀다고 그러는 거야?!’라고 되물었는데 1년을 살다 보니 이모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서울에서의 15분 거리와 강릉에서의 15분 거리는 차이가 있었다. 강릉 어디든 차 타고 20분이면 가는데, 매일 출근 길이 그 시간이 걸리니까 남편의 퇴근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면 40분 이상이 걸렸으니 멀긴 먼 거리였다.

전원주택의 삶은 즐겁고 매일 펜션에 여행 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 집이 아니다 보니 관리가 쉽지 않았다. 마당 관리 하려면 장비가 필요한데, 비싼 돈을 주며 장비까지 사고 싶지 않았다.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면 할 수 없이 나가서 하루종일 잡초를 뽑고 잔디 가위로 잔디를 깎았다. 앞 집 아저씨는 매일 새벽 잔디를 깎고 물 주고 관리하시는데, 우리 집은 한 달에 두어 번 겨우 나가서 잡초를 뽑으니 마당은 엉망이었다. 부지런하게 정성을 다해 가꿔야 하는데 그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시기에 맞추어 이사를 나가고 싶은 마음에 매일 자기 전 네이버부동산, 강릉교차로, 강릉부동산신문을 돌아가면서 보는 게 일상의 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하는 가게의 건물이 매물로 나온 걸 본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거렸다. 예전에 시어머님이 ‘이 건물 나중에 너네가 샀으면 좋겠다’라고 나지막이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매물이 나온 걸 보고 가슴이 떨리는 것조차 우스운 상황이었다. 이것은 내가 사고 싶은 신발, 가방, 옷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 가슴만 떨릴 수 없어 남편한테 말했더니 남편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이미 머릿속에 ‘사고 싶다’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이 건물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남들에게는 별 관심 없는 그저 그런  낡은 5층 건물이었다. 매월 월급 받는 날은 늦게 돌아오는 것 같았는데, 월세 내는 날은 눈 깜짝하면 돌아왔다. 마음 편히 월세 안 내고 가게를 운영하기 좋겠다는 마음도 컸고, 그 건물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곳도 있어서 그 건물을 산다면 집까지 완벽하게 해결되었다.

우선 부모님들께 상황을 얘기하고,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대출, 마이너스 통장 등 융통할 수 있는 모든 상품을 알아보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때 대장부인 시어머님이 이번이 기회라며 한 번 모험 해보라고 부추겼다. 친정엄마는 워낙 소극적인 사람이라 우리한테 너무 과하다며 말렸지만, 우리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기로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시어머니한테 ‘저희 계약했어요’라고 말했더니, 아뿔싸, ‘너네 겁도 없네’ 한마디. 뒤에 축하한다고 말씀하셨지만 ’ 겁도 없네 겁도 없네 ‘가 머릿속에 한참을 맴돌았다.


우린 겁대가리 없이 생애 첫 집, 아니 생애 첫 건물을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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