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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멈춤, 기다림, 나아감

by 사색가 연두

나는 오늘 몇 번을 멈췄고 기다렸으며 나아갔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매 순간, 그리고 지금도. 나는 멈춰있는가,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나아가고 있는가.


내가 7살이었던 무렵,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한 친구와 다투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 우리 집엔 컴퓨터가 한 대밖에 없어 두 명이서 번갈아가며 게임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욕심을 부렸다. 친구의 차례로 넘어갈 때에도 한 번만 더 해보겠다고 우겼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싸우고야 말았다. 친구는 나의 뒤통수를 후렸고, 한창 게임에 몰입해 있던 나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되갚아줬다. 그렇게 친구 얼굴에 상처를 내 버렸다. 어머니는 그 상처를 보시곤 친구에게 미안하다며 서둘러 집으로 돌려보냈고, 그런 뒤에 효자손으로 내 손바닥을 세차게 후리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세차게 후려 맞은 뒤,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벌을 서게 되었다. 한참이 지났음에도 어머니는 나를 봐주지 않으셨다. 다리가 저리고, 팔이 저려왔다. 솔직히 은근슬쩍 중간에 팔을 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기다림 동안 친구와 다투던 일에 대해 충분히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가 어떻게 행동했어야 바람직했을지에 대해 말이다. '기다림'이란, '내가 그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행위'라 말한 적이 있다. 현재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우리는 기다림이란 시간 속에서 이렇게 자신을 돌아볼 중요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신호등의 노란불은 1초에서 2초 사이 잠깐 반짝거리곤 사라진다. 그래서 빨강불과 초록불에 비해 존재감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 또한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시기들을 맞이해 왔을 테다. 그런데 그 시기들 중 기다리는 시기에 대해선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그 순간은 대체로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 전체 시간을 놓고 봤을 땐 정말 짧은 찰나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서둘리 나아가는 데에만 목을 매고 있다. 다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잠시 멈추고 기다려야 할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아니면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을 반성한 뒤, 용기를 가지고 직접 어머니께 찾아갔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는 질문하셨다.


"뭘 잘못했지?"


"친구에게 양보하지 않고 혼자서만 게임을 했고, 친구의 머리를 때렸어요."


"넌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지?"


"친구에게 양보를 했어야 했어요."


오랜 기억이라 정확히 내가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잘 넘어갔다. 나는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멈추지 않고 결국 사고를 쳤다. 그렇게 노란불을 맞이했고, 다시 초록불이 들어왔을 때 나아갔다. 당시 7살이었던 나는, 나름의 용기를 가지고 발을 뗀 것이다.


우리가 도로에서 신호등의 신호를 지켜야만 하는 이유는 교통의 '질서'를 위해서다. 삶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의 삶에도 어느 정도 질서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무질서한 자유는 방임에 불과하다. 그것은 혼란을 초래한다. '내면의 질서'는 곧 나만의 어떠한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주고, 옳다 그르다의 판단 기준이 되며, 때를 맞춰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신호등이 된다. 이것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교통사고와 도로 혼잡을 부르게 되어 비명소리와 클락션 소음이 끊이지 않게 울려댈 것이다.


살아가면서 멈춰야 할 때는 분명히 온다. 욕심이 화를 부르는 경우는 굉장히 흔하게 일어나는 일중 하나다. 그것을 역사로 배웠으며, 현대 사회에서도 여러 인간들을 보며 배울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걸어오고 있는 삶의 길에선 신호등이 따로 놓여있지 않다. 언제 멈춰야 하고, 언제 기다려야 하며, 언제 또 나아가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이 길을 잃어 방황할 때에도, 스스로 매번 고민에 빠져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결국 거름이 되어 자신만의 신호등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적절한 상황에서 스스로 신호등을 비출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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