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덧없음
오전 6시 기상, 이제 한창 겨울이다. 그런데 기후 변화 때문인지 겨울인데도 그렇게 죽을 만큼 춥진 않다. 겨울이 늦게 온 만큼, 아직 제대로 된 한파가 시작되지 않은 건가?(이 글을 쓸 당시엔 1월 중순이었다.) 어쨌든 새벽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나갔더니, 그래도 곳곳에 서리가 끼어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눈을 좋아한다. 근데 요즘 눈을 보지 못한 지 한참 되었다. 경상도엔 눈이 정말 안 온다. 그래서, 그나마도 비슷한 서리를 보곤 생각에 잠긴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보고 있는 이 서리는 곧, 낮 시간이 되면 녹아 없어질 것이다. 잠깐의 기억에 머물다 가는 서리는 마치 인간의 생애도 이처럼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는 약 300만 년 정도로 추정된다. 그렇게 지구의 45억 년을 돌아보았을 때, 인간이 지구에 머문 시간을 24시간으로 환산하면 고작 '3초' 밖에 되질 않는다. 유인원부터 시작해서 현대사회까지 이르기에 방대하게만 느껴지는 인류의 역사는, 사실상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찰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 우린 개인의 삶은 도대체 얼마나 더 보잘것없는 것일까? 100세 시대라고 해도, 실은 아직까진 주요 선진국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여성은 80대 중반, 남성은 80대 초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남은 여생을 위한 성공을 부르짖는다. 뭐, 좋다. 근데 이 성공이란 게 뭔가?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이란걸 이룬 사람들은 대게 두 부류로 나뉜다. 지나치게 자만하는 사람과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 이 둘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다.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서 겸손함을 배운 이들은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다음을 준비한다. 그들이 보는 세상의 관점 앞에선 한 개인은 자연스레 겸손해질 수밖에 없음을 아는 이들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자만에 빠져 자아도취에 절여진 사람들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게 되면 패닉에 빠진다. 외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빠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못 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 결국, 그 자리에 오래 못 버티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젊은 나이에 성공하면 위험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조금 거슬리게 들리는 사람들도 있을 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이치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지금 본인들의 인생이 얼마나 대단한진 모르겠으나, 우리가 무얼 하든 세상은 아무런 대답도, 답변도 해주지 않는다. 세상은 우릴 바다에 툭 던져놓고선 그저 비웃으며 바라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어디 한 번 힘껏 헤엄쳐 보라고, 이 드넓은 망망대해에서. 그곳에서 아등바등 삶을 위해 헤엄쳐 가는 우리들을 보고 있자면, 아마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하찮고 보잘것없는 풍경일 것이다.
근데 어쩌란 말인가? 나는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는데.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되는 것인데. 찰나의 순간을 위해 반짝거리는 서리처럼, 우리도 찰나의 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반짝거리려고 애쓰는 거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은 고민해 왔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한 답도 이미 밝혀냈다. 현재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좀 허무한 결과의 대답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이 꽤 편안해질 것이다.
세상에 놓인 의미와 뜻 같은 건 사실 없다.
'인간은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모두 죽는다.'
한 인간의 생애란 딱 이것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세상은 우리가 뭘 하든 아무런 답을 내어주지 않는다. 우리는 정말 하찮고 보잘것없는, 찰나만도 못한 시간을 걸어갈 뿐이다. 그렇다고 이미 태어났는데, 이대로 삶을 놓아버릴 것인가? 나는 여기서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 내가 뭘 하든 이 짧은 시간을 나 스스로 디자인하는 일은, 사실 이 세상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다. 자신의 주위 반경에 대한 변화는 지구적 관점에서만 보아도, 고작 한 점의 동그라미만도 못하다. 그러니 아깝지 않은가. 남의 시선과 눈치를 보고 놓친 수많은 기회들이, 나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수많은 순간들이.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나 작고, 짧은데 도대체 두려울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오후 1시, 서리는 녹아 없어져 있었다. 그래도 그 냉기와 고독함은 내 <서랍> 속에 고요히 모셔놨다. 너의 덧없음이 나를 글로 이끌었다며 감사했다. 그리고 나의 덧없음이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더욱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저 후회 없이 살아기 위해 이리 살든 저리 살든 어차피 다 죽음을 맞이하는 생애에 누가 잘났는지, 못났는지 따지는 것이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갈등과 혐오를 위해 살아가기엔 그 모습이 너무 하찮치 않은가.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 하기에도, 이 인생의 기간이 너무 짧지 않은가.
우리의 모든 과정이
다 저마다의 의미가 되고
우린 모두 언젠가
죽음 앞에 똑같이 서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될 것이다.
"후회 없이 반짝거렸는가?"
삶은 그것에 대한 대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