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어린 꿈을
저기, 저 멀리 날아가는 풍선을 보고서 생각한다. 힘들고 고되었던 오늘도 결국 지나갔다고. 하루는 그저 우리가 괴롭던, 기쁘던 계속해서 지나갈 뿐이다. 세월은 이렇게나 무상하다. 어릴 적 품었던 꿈과 야망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 따라서 잃어가는 방향과 익어가는 방향으로 나뉜다.
내가 어린이집에 다녔을 무렵에 유명했던 노래 하나가 있다. 동방신기의 '풍선'이라고. 이 노래의 가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나와 비슷한 세대들에겐 노래방 엔딩 곡으로도 유명하니 잊을 수 없는 곡일 것이다.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을 꾸었지!"
6살 무렵 일이다. 나는 어머니와 둘이서 작은 놀이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꽤 오랜 기억이라 어느 놀이공원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딱 기억하고 있는 한 순간이 있다. 둥둥 떠다니는 헬륨 풍선을 보고서 한눈에 반했던 순간. 아마도 그때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풍선들을 실제로 처음 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빤히 풍선만을 쳐다보는 나를 보고선 어머니가 눈치를 채셨는지, 하나 사주면 좋겠냐고 물어보셨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매우 어려웠던 지라, 나는 그런 어린 나이에도 뭐 하나 제대로 사달라고 졸라대질 못했다. 괜히 그러자면 부모님께 죄송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되려 사달라고 말도 못 하고 우물쭈물 망설이는 나를 보곤 마음이 아프셨나 보다. 내 손을 꽉 잡아끌며 풍선가게로 향했고, 흔쾌히 풍선을 사주셨다.
아직도 아찔하다. 풍선을 산 지 1분도 안 된 일이었다. 나는 그 풍선을 사자마자 신나게 흔들어댔고, 실수로 끈을 놓쳐버려 하늘 멀리 날려 보냈다.
울면서 바라봤다. 저 위로 날아가는 풍선을. 놓친 것이 너무나도 후회되어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안 그래도 큰맘 먹고 어머니께서 사주신 걸 텐데 말이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정말 바보 같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지도 모르게, 자신이 어릴 적 품었던 수많은 풍선들을 스스로 손 놓고 날려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예쁜 꿈들은 현실에 치여 무너지고, 스스로 끈을 놓고선 원하지도 않았던 현실과의 타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렸을 적 우린, 저마다의 꿈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볍게 떠오르는 부력과 자유로움은 그만큼 쉽게 터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뭐 풍선이 날아가거나 터지면 어떠한가? 다시 불면 그만이다. 나이가 든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지금 사람들은 지나치게 나이에 대해 집착을 하며 젊음을 예찬하고 있다. 비록 나는 아직 비교적 젊은 나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나이를 먹는 동물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점차 느낀다. 단순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넘어, 인간은 겉만 늙어버릴 뿐 속엔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면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우린 아직도 그 천진난만한 마음의 일부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마음속 한편엔 현실 속 이성에 반하는 반항심과 동심 또한 지니고 있다. 감히 예상하건대, 이 어린 마음은 내가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든다. 내가 나중에 50대, 60대가 되어도 철없는 생각을 갖고 있을 거란 예감이 든다. 브런치에서만 보아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들이 꿈을 향해 도전하고 나아가는 것들을 보고 있자면 많은 감정들이 오간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꿈이란 것은 쉽게 터지고 마는 풍선 같은 면을 띈다. '오늘 하루는 힘차게!'라고 외쳐도, 막상 좋지 못한 현실이 닥쳐오면 그런 생각은 덧없게 터져버린다. 근데 그래도 괜찮다. 애초에 꿈은 자유롭게 떠날 때 아름다운 법이다. 오히려 내가 억지로 그 풍선의 끈을 잡고 있는 것은, 때론 그 풍선의 자유로움을 억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되려 집착과 강박이 되어 나를 괴롭히도록 만든다. 비록 손을 놓는다면 풍선은 저 멀리 구름 타고 떠나가겠지만, 이루지 못한 꿈은 흔적과 기억으로 남아 나를 언제나 다시 움직이도록 한다. 바람은 열정이다. 공기는 디딤돌이다. 점차 나이를 먹으면 이 바람과 공기는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익어 가도록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이상은 그렇게 익어가는 것이다. 어릴 땐 놓쳐버리면 그 자리에 서서 울어댔지만, 이젠 놓쳐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긋이 바라볼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풍선을 불 수도 있다. 날리고, 날아가는 마음들은 자연스러운 거다.
목적과 목표라는 것은, 사실 허상에 가깝다. 그러니 쉽게 터지는 것이다. 인간은 멀게 느껴지는 미래를 위해 몰입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나는 꼭 위대한 작가가 될거야!' 이런 목표를 가져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대게는 일주일도 못 간다. '나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날씬하고 멋진 몸매를 가져야지!'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실패한다. 다만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뭐가 다를까?
생각을 앞당긴다. 고민과 사색의 차이와 같다. '사색'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명확한 과정으로 '고민'을 앞당긴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뭐지?"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은 그저 오늘 하루에 집중하며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별 생각없이 그냥 지금 당장,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어쩌다가 이룬 성과들이 쌓여온 결과이다.
요즘 청소년, 청년 세대들은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자기가 뭘 하고 싶은 지에 대해서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당장 내 주변을 보아도 그렇다. 하지만 괜찮다, 그리고 당연하다. 한창 자아가 형성될 시기에 자신을 돌아볼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꿈이 없다 말해도 좋다. 앞서 말했듯이 꿈이라는 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는 애써 숨기고 있는 것이고, 헤매고 있는 것일테다. 우린 다들 어렸을 적에 품었던 동심과 꿈이 있다. 그래서 어렸을 적 내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는 일은, 나를 정말 솔직하게 돌아보도록 하고 알아가도록 하는 소중한 힌트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실은 꿈이라는 건 잃어가는 것이 될 수 없다. 당신이 인간이라면, 무조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꿈과 이상이라는 건 당신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리고 세상에 비해 나 자신이 너무나도 작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때야 비로소 익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