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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껍데기

우연한 만남

by 사색가 연두

오랜만에 고향인 부산에 방문했다. 어렸을 적부터 바다와 가깝게 지낸 터라, 바다라 함은 내겐 익숙하다. 비린 냄새며, 부드러운 모래알이며, 귀를 열어주는 파도 소리까지. 거기다 잔잔한 바람을 더해 바다를 구경하는 일은 언제나 내 마음속을 편안하게 만든다.


신발을 벗고, 모래알을 밟는다. 그렇게 발로 모래알을 밀고 떼며 닿다가... 악! 무언가가 발에 밟혔다. 밑을 보니 거친 피부를 두른 큰 조개껍데기가 꼴좋다는 듯 웃고 있던게 아닌가. 나는 괘씸한 듯 조개껍데기를 손에 쥐었다. 그런 다음 안에 뭐가 들었나 확인해 보려다, 이내 마음을 접고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게 가장 아름다운, 우연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은 어찌 보면, 모든 것이 '우연'으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자. 내가 태어난 것 자체도 1억 마리에서 2억 마리에 달하는 정자가 난자를 만나 일어난 일인 것이다. 이는 확률적으로 기적에 가깝다. 그리고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태어난 것, 또 그 많은 지역들 중에서 부산이란 지역에서 태어난 것, 또 그 아래 약 5,000만 명의 인구들 중에서 내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을 만나게 된 일. 이는 확률적으로 도저히 계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과연 이 모든 일이 미리 정해져 있던 일이라 감히 상상할 수 있겠는가? (가끔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개인적으로 음모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닷가를 걷다가 조개껍데기를 밟은 일은 확률적으로 얼마나 되는 일일까? 계산은 할 수 있을까? 뭐,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한 수학자라면 가능할진 모르겠다만 적어도 이 일에 필연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이해타산적으로는 절대 해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한 번 생각해 보라. 전 세계 80억 명의 인구 중에서, 약 5,000만 명의 대한민국 인구 중에서, 한국의 수많은 글쓰기 플랫폼들이 있을테고, 그 많은 플랫폼들 중에서 이 브런치라는 공간, 또 이 공간 안에서 오늘 하루만 해도 수많은 글들이 올라올 텐데, 당신은 그 많은 글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지금 나의 글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징그럽고 기이한 일인가?


다만, 그렇기에 내 주위 모든 것들이 '소중한 것'들이 된다. 지금 이 공간에서 내가 글을 적는 일도, 서로 댓글로 소통하는 일도,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표시들도, 이 모든 것들이 다 우연의 만남에 기반을 둔다. 애초에 인간과 같은 생물이 지구라는 행성아래 존재하는 것만 해도 우주적 관점에선 상상하기도 힘든 확률이라 한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 되겠는가?


그렇지만 인간은 늘 익숙함에 속는 미련한 동물이다.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우리가 태어난 것에 대해선 아무런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 그냥 어쩌다 보니 태어난 거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있다는 이 사실만큼은 정말 기적 같은 일에 가깝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지금 당장 내 옆에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한 번 보라. 평소엔 그들을 보아도 아무 느낌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말도 안 되는 확률의 우연에 달려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달리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당신은 내 사색의 장소에서 같이 걷고 있다는 증거다. 익숙함에 속기 전에 다시 한 번 상기시켜라. 그리고 내가 이 땅에 두 발을 딛고서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되뇌이자.




우린 진정으로 소중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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