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인간의 자아
우연히 걷어찬 돌멩이를 가만히 지켜본다. 사각형도 오각형도 아닌 것이, 뒤죽박죽 불완전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게 꼭 내 마음만 같이 생겼다. 그리고 현재 돌아가는 세상과도 닮았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세상은 절대 완벽하지도, 완전하지도 못한다. 그 이유야 간단하다.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 완벽해질 수 없으며, 완전함을 추구할수록 강박과 집착에 구속될 뿐이다. 아무리 뛰어난 그림 솜씨를 갖고 있어도 모두를 만족할 만한 그림은 그릴 수 없다. 정말 똑똑한 과학자들의 이론도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면 진리가 되지 못한다. 인류는 그렇게 수도 없이 많은 실패와 실수를 저지르며 발전해 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완전하고, 비이성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한때 완벽주의자였다. 무언가 내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나라도 플랜이 뒤틀려버리면 멘탈은 바로 바스락 부서져 버리곤 했다. 모든 계획과 일정이 내가 예상한 대로 딱딱 맞아떨어지길 바랬으며 불확실성에 근거한 어떠한 변수도 고려하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멍청하고, 무모하며, 오만한 생각이었다.
세상이 왜 이렇게 이상하게 흘러가지?
왜 인간은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거지?
이건 사색이 아닌 막연한 고민이다. 사실 내가 하는 일에 오류가 생기는 것은 아주 당연하게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진행할 때에, 앞날이 캄캄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때면 본능적으로 불안해지곤 한다. 머릿속으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을 쉽게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란 원래 힘든 법이다. 다만 생각을 해보면, 우린 사실 늘 그렇게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왔다.
인간에겐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만약 지금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중이라 가정해 보자. 그럼 당신은 어느 날짜까지 대충 몇 kg을 감량할 것이고, 일주일에 적어도 며칠을 운동할 것이며, 식단은 어떤 음식 위주로 구성할 것인지와 같은 여러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다. 이를 '이성적 자아'라고 해보자.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계산적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울 줄 알고, 무언가를 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는 당신의 모습을 의미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본인은 주변에서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그중에서 성공한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 정도로 다이어트란 힘든 여정이다. 갑자기 어느 날 운동을 쉬고 싶어서 하루 쉰다거나, 맛있는 게 너무 당겨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군것질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여러 가지 변수가 다이어트 중인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렇게 당신은 그 유혹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를 '충동적 자아'라고 해 보자. 이는 직관적이고 감정적이며, 습관과 본능의 영향을 많이 받고, 빠르게 반응하고 즉각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당신의 모습을 의미한다.
사실 우리는 매일 이 두 가지 자아가 충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천천히 떠올려보자. 당신은 오늘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거쳐왔는가? 아마 모든 일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택지를 거쳐왔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선택을 하며 숨을 쉰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사실 매 순간 '선택'에 놓여있는 것이다. 우리가 완벽해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이렇게 몇백, 몇천 혹은 몇만 가지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 모두 최선의 선택만을 할 수 있을까? 본인이 신이 아니고서야, 당연히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순간, 우린 정말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마음이 꽤 편안해지고, 안정된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실수와 미숙함도 쉽게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을까?' 하며 너그럽게 넘어가줄 넓은 아량을 지니며 말이다. 그럼 함부로 남에게 엄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게 되고, 스스로에게도 겸손해지게 될 것이다. 이건 굉장히 큰 그릇을 가지고 있는 거다. 돌멩이는 고요한 침묵의 지혜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물이다. 본인이 만약 어떤 조직이나 모임을 이끌어가는 사람 혹은 앞으로 이끌게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이 점은 고려하고 있길 바란다. 절대 본인이 생각한 대로 그 조직이 흘러가진 않을 것이란 점을.
그런데 불완전함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 불확실성을 대하는 태도도 꽤 여유롭고 유연해진다. 이건 정말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바뀌기란 쉽지 않다. 그마저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순간 화를 낼 수도,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지극히 정상이다. 다만, 스스로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일을 행하는 속도 자체가 달라진다.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질에 아무리 치이더라도 우직하게 또다시 굴러 떨어진 그 자리를 지키는 돌멩이. 시간이 지나 그 자리는 흔적이 된다.
우리는 <휴지>처럼 연약하지만 유연하게 흘려보낼 수 있다. 동시에 그렇게 깎이고, 떨어지고, 빚어지면서 돌멩이처럼 우직하게 본질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모양이 있다면, 아마 그 모양은 돌멩이와 비슷할 것이다. 못생기고, 각도 이리저리 튀어나와 있으며, 도대체 이건 무슨 도형일까 싶은 모양. 다만 돌멩이는 바람과 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고 깎이며,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한다. 우리의 성장도 이와 같다. 그 안 속에 나의 세월을 품고, 점점 더 단단해진 채로 깎이고 빚어질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성숙해지는 것 같다.
나의 미성숙함을 마주하고
늘 애쓰며 속삭인다
못생겼다
봐도 봐도, 또 못생겼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