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에게 닿기를...
며느리 내보낸다는 봄볕도 지나갔고,
머리가 벗어질 만큼 뜨겁던 여름도 지나갔다.
선선한 바람이 순식간에 덮쳤지만 그래도 간간히 내 비취는 햇볕은 여전히 따갑다.
난 손에 들고 다니는 게 싫어 언제나 가방을 가로질러 멘다.
그래서인지 양산은 그저 어머님들이 전유물이라 여겼고, 선물만 했지 나는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없던 기미도 생기고 칙칙해짐은 감수해야 했다.
선크림을 두어시간 만에 한 번씩 바른다는 것은 내겐 불가능이다.
잊어버리기도 하고 게으르기도 하고.
올해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양산을 박스에 담았다.
너무 빨리 정리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분명 집을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나갈게 뻔해서
정리할 때 깊숙이 넣어두기로 했다.
그 대신 모자를 눌러쓴다.
"엄마, 지디가 진주목걸이처럼 양산도 쓰고 나오면 좋겠어.
그러면 우리도 자연스레 양산을 쓰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한여름에 아들 녀석이 푸념처럼 꺼내놨던 이야기다.
** 네장의 사진은 naver에서 캡쳐함.
그러고 보니 이정재도 뷔도 송민호도 자연스레 진주목걸이를 한 기억이 떠올랐다.
내 옷 같은 트위드 재킷도 자연스레 입고.
아주 오래전 김원준이 스커트를 입고 나왔을 때에도 그리 이상하진 않았다.
그땐 멋지다 보다는 연예인이니 시도를 해보는구나 했다.
현실에선 사실... 아직은 부담스럽다.
촌스런 나는 자꾸 진주에 눈길이 가겠지.
어린 남자가 이쁘게 진주를 하고 트위드를 입고 양산을 쓰고 다니면
어쩌면 멋짐에 놀라 그러려니 하며 패션으로 문화로 받아들일지는 몰라도
함께 일하는 사무실의 남자라면 고개를 절레절레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덜 익숙함이다.
뽀얗고 이쁜 조카 녀석이
얼굴에 선크림을 바른 건지 화장을 한 건지
하여튼 뭔가 허옇게 바르고 입술까지 조금 붉게 바르고 나타날 때면 멋짐보다는 아쉬움이 더 큰 걸 보면
난 역시 아무리 열심히 따라간다 하지만 나이 듦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년 봄에는 양산을 꼭 쓰리라.
더 이상 피부가 늙으면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르니.
그전에 조금 더 앞서가는 누군가가
뚜벅이 남자들을 위해 양산을 쓰고 나와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생각해 보면 궁궐의 임금도 양산을 쓰고 다녔으니 ㅎㅎ
당연하게 남자들도 피부를 지키기 위해, 더위와 맞서기 위해
당당하게 양산을 들고 다닐 권리가 있거늘
나 같은 시선 때문에 쉽지 않음인 것이다.
이젠 생각을 바꾼다.
지금부터 겨울내내 남자의 양산을 응원하며 단단해질테니
24년에는 남자의 양산이 당연시되도록
멋진 그 누군가가 우리게에 익숙함을 선사하길 기대해본다.
양산을 깊숙이 넣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