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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람 Sep 06. 2023

공모전은 처음이라

"...아? 네? 예선 통과..?"

고등학교 때에는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공부하는 데에 쏟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전교 1등부터 20등, 30등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 심화반이라는 게 있었다. 여기에 들면 야자 시간에 개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독서실 같은 공간을 주고, 외부에서 초청한 논술 수업을 듣게 해 주고, 국영수 심화 수업 같은 걸 해줬던 기억이 난다.


3년 내내 열심히 공부한 덕분인지 나도 심화반에 포함되어 그런 나름의 혜택들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좋은 대학에 가지 못 하면 정말 내 인생에 큰일이 나는 줄 알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도 다행히 작가에 대한 꿈은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18살의 어느 날, 집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청소년 시나리오 공모전 글을 보게 됐고, 그 공고를 보는 것조차 괜히 혼자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교육진흥원? 그런 곳이었던 것 같다.


일단 한번 지원해 보기로 했다. 예선, 본선이 있었고, 예선에서는 완성된 시나리오까지는 아니고 기획의도, 등장인물, 줄거리 정도를 포함한 시놉시스를 제출하는 거였다. 사실 어디서 배워본 적도 없고,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에 나와있는 정보들로 벼락치기를 해서 어설프게 시놉시스를 썼던 것 같다.

 

아마 공고 마감일까지 고치고 또 고쳐 쓰면서 겨우 제출했다. 그럼에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첫 공모전이니 만큼 무언가를 써서 제출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었다.

결과에 대해 전혀 기대할 수준이 못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러고 며칠간은 제출했던 시놉시스를 꺼내 보며 '정말 이렇게 써서 작가가 될 수 있나..?' 하는 성찰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공모전에 대해 애써 잊으려 노력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이다.

난 인천 토박이라, 서울에서 전화올 일은 딱히 없었기 때문에 약간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백** 학생 번호 맞을까요?"

"네, 맞는데요."

"아, 여기는 한국방송~~~~~~ 인데, 보내주신 작품이 예선 통과되어서 연락드렸어요~"


순간 가던 길을 멈추고 그대로 얼음이 됐다.


"...아? 네? 예선 통과..?"

"(웃으며) 네, <******(작품 제목)> 써주신 거 맞죠?"

"(떨리는 목소리로) 아, 네, 네.. 예선 통과면.. 본선 진출했다는 거죠..?"

"네, 맞아요! 정말 축하드려요~!"



세상에. 본선 진출이라니. 진짜? 내가?


달달 떨리는 손을 겨우 붙잡고, 목소리까지 떨면서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하도 떠는 게 느껴졌는지, 전화기 너머의 여자 분께서 마치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웃으며 정말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여자 분의 친절한 말투와 진심이 담긴 축하가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이야, '그 작은 공모전에 예선 통과가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때에는 그저 너무 좋고, 믿기지 않고, 벅차는 기분과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설렘을 느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고서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다니. 

그런 게 현실로 일어나다니.


아무튼 본선 진출을 하면, 직접 서울로 가서 내 시놉시스에 대해서 발표를 해야 했다. 

굳이 따지자면, 내 인생의 첫 피칭이었다.


남들 앞에서,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쓴 이야기에 대해 발표를 해야 한다니.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말도 잘 못 하는 내가 입이나 제대로 뗄 수 있을까?'


본선 진출에 대한 기쁨도 잠시, 머릿속이 온통 그 발표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찼다.







+ 글을 쓰고 나서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당시 공모전으로 보이는 공고글을 발견했다.


이제 보니 본선 날짜가 내 생일이었다니.

마치 생일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겠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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