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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Jun 18. 2024

가난은 기와지붕을 타고 주저앉다

쌍문동 우리 집에는 쥐들이 같이 살고 있었다. 

기와지붕 아래 천장 위, 부엌 구석과 하수구에 살면서 찍찍 소리를 내곤 했다. 가장 놀란 적은, 아침에 세수하러 수돗가에 가면 쥐들이 낌새를 채고 도망가는 모습이다. 나는 ‘악’ 소리를 지르고 대충 씻고 나오곤 했다. 내가 쥐띠인데, 정말 쥐는 가까이 할 수 없는 동물이었다. 실제 쥐를 맞닥뜨리면 나는 질색하곤 했다. 


1970년, 80년대는 집집마다 쥐가 많아서,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쥐잡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쥐는 위생과 환경이 좋지 않았던 그 시대, 낡은 집 구석에 서식하는 동물이었다. 그 시절의 ‘쥐’는 가난의 대표적인 산물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부엌 뒤 수돗가 쪽에서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가 났다. 

“엄마, 여기서 썩은 냄새가 계속 나는데, 이거 무슨 냄새야?” 


식구들은 무심했는데, 내가 계속 냄새 난다고 하니까, 가족 중 누군가 수돗가 뒤쪽을 살펴보다가 쥐 시체가 있는 걸 발견해서 화들짝 놀란 적도 있다.


내가 아홉 살 무렵, 여름방학 때 엄마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 마루에서 함께 얘기하고 있는데 천장 위에서 뭔가 쿵쿵, 소리가 들렸다. 천장 안에서 돌덩이가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그냥 쥐새끼들이 돌아다니다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우리 집은 옛날식 흙집이라 쥐들이 지붕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날은 이 집에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엄마 친구는 오후에 집으로 돌아가고, 그날 저녁이 되었다. 


여름밤에는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을 먹거나 TV를 보고 더워서 마루에서 이불 깔고 자곤 했다.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적막을 깨고 ‘우르르 쾅’ 하는 굉음이 들렸다. 마루에 있던 식구는 혼비백산 놀라 일어났다. 문이 열려있던 안방에 하얀 연기가 가득 찼다. 순식간에 지붕이 폭삭 주저앉으면서, 깨진 기와와 흙더미들이 안방에 쏟아진 것이다. 그때 안방에 둘째언니가 누워있었다. 부모님은 급히 언니를 끌어냈고 붕괴 위험에 온 가족이 집밖으로 나왔다. 


한 여름 밤을 뒤흔든 굉음에 동네 사람들도 속속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어른들이 걱정하며 우리 집 앞에 모여들었다. 언니는 다행히 머리에 혹이 나는 부상만 입었다. 아빠와 엄마는 삽과 빗자루로 안방에 떨어진 흙과 돌덩이들을 치웠다. 동네 사람들도 집에 들어와 도와줬을 것이다. 나는 집 밖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건너편 옥상에 올라가 보니, 우리 집 지붕 한 쪽이 폭격을 맞은 듯 가운데가 뻥 뚫려 있다. 아홉 살 아이가,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동그랗게 뚫린 그 구멍만큼 마음도 뻥 뚫렸다.


살면서 자기 집 지붕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내 나이 아홉 살 때 겪었던 지붕 무너진 경험은, 한 밤에 몰아치는 태풍보다 더 강렬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동네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던 한 여름 밤의 해프닝은 지금도 뇌리에 박혀 있다. 그 때 나는 ‘지붕이 무너졌다는 사실보다, 가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것이 창피했다. 1980년대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던 시절이지만, 유독 우리 집의 누추함을 들킨 듯해서, 그날 밤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고작 아홉 살 때 ‘가난’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느낀 날이다. 


내가 중학생 때 알았을까? 시멘트 바닥에 나무로 대충 만들어 장판을 깔았던 마루가 놓인 집. 뛸 때마다 삐그덕 거리던 그 마루와 작은 방 두 개, 부엌이 전부였던 15평 안팎의 이 집은 우리가 주인도 아니었다. 

‘김장손’이라고 불린 주인에게 사글세로 살던 집이었다. 부모님은 그렇게 집 한 채 없이 자식 여섯 명을 건사하며 사글세 집을 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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