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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Jun 19. 2024

내 생애 첫 친구, 은나

한나나, 한은나, 한세나, 한보름. 


네 자매는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우리 집 바로 앞에 살았다. 쌍문동 시절, 가장 잊지 못하는 친구가 ‘은나’다. 은나는 생애 첫 친구다. 은나네가 우리 집 바로 앞에 살다 보니,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신기한 게 은나는 1973년 생으로 나보다 한 살 어리다. 당연히 학년도 1년 아래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서로 이름을 부르며 친구가 됐을까. 가난했던 시절, 우리는 친구가 그리웠는지 모른다. 우리도 가난했지만 은나네는 더 어렵게 살았다. 나는 은나 부모님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항상 네 자매가 밥을 해먹고 살았다. 첫째 나나언니가 주로 동생들을 챙기며 가장 노릇을 했다. 


원래 은나네는 동생 세나까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나네 엄마가 넷째를 낳았다. 또 딸이라고 한다. 우리는 넷째고, 딸이니까 이름을 ‘네나’라고 짓다보다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넷째 이름은 ‘보름’이라 지었다. 첫째 나나언니가 보름이를 포대기에 업고 키운 기억이 난다.  


내가 수업이 오후반일 때, 은나네 집에 자주 가서 놀았다. 은나네 집은 커다란 계단 한 개를 밟고 커다란 불투명 유리문을 옆으로 밀어, 한 계단 더 올라가는 집이었다. 맨 안쪽에 방 하나 있고 그 옆에 작은 부엌, 나머지는 시멘트 바닥으로 돼 있었다. 그 바닥에 나무 평상을 놓고 마루로 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열 평이 채 안 되는 집이다. 어째 우리 집보다 더 초라해 보이던 은나네. 그런데 더한 문제는 부모님이 없어서 늘 네 자매만 사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는 항상 아빠, 엄마가 있는데 은나는 나보다 더 형편이 안 좋네’


어느 날 골목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는데, 그 중 한 여자 애가 은나에게 ‘안 씻어서 지저분하다느니, 냄새가 난다느니’하면서 모욕적인 말을 했다. 은나는 그 애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너가 그렇게 말해서 내가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아니?”라고 대응했다. 그 여자애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저학년의 아이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대개 화부터 냈을 텐데, 은나는 자신의 감정을 말했다. 만약 내가 그런 말을 들었다면? 

“야, 니가 뭔데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해?” 하며 따졌을까? 

그런 상황에서 차분하게 대처한 은나가 어른처럼 보였다. 그 때 대부분은 집안에 욕실이 없었다. 나 역시 제대로 씻지 못하고 살았던 시절이다. 


어느 날은 은나네 집에 갔는데, 점심으로 찬밥에 마가린과 간장을 비벼먹는 것이다. 우리는 식구가 많아도, 엄마가 콩나물비빔밥, 김치찌개, 된장찌개, 동태찌개, 고등어조림 등 다양하게 해줘서 먹고 사는데. 


언젠가는, 학교 끝나고 집에 가니 은나네 네 자매가 우리 집 마루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엄마 없이 지내는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 하니, 엄마가 데려다가 우리 집에서 밥상을 차려준 것이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다. 나는 어릴 때 볼 살이 통통하고 체구는 작았지만 딱 보기 좋은 몸이었는데, 나나언니와 은나는 무척 왜소하고 말랐다. 한참 먹고 성장해야 할 시기에, 제대로 못 먹어서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는 손이 커서 부침개를 해도 잔뜩 부치고, 감자와 고구마도 많이 쪄서 은나네도 갖다 주고 이웃과 나눠 먹었다. 심부름은 늘 내가 도맡았다. 


은나네 엄마는 우리 엄마와 매우 다른 이미지였다. 늘 진한 화장과 풍성한 파마머리,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화려한 옷을 입었다. 가뭄에 콩 나듯 은나네 엄마를 봤다. 은나네 아빠는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동네에 은나 아빠가 감옥에 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뒤이어 은나 엄마가 새로운 남자와 결혼한다고 한다. 


‘은나 엄마가 새로 결혼하면 애들은? 가정을 새로 꾸린 엄마가 애들을 데려가는 건가?’  

   

어느 해 봄, 내가 4학년쯤 됐을까. 우리 집 앞, 작은 골목에 용달차 한 대가 들어서더니, 은나네 집 세간이 용달차에 실렸다. ‘결국 은나네는 이사 가는구나’ 


은나네 자매가 올망졸망 차안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다. 엄마는 언제 사왔는지, 강냉이와 과자를 사와서 자매에게 한 아름 안겨주었다. ‘엄마, 나도 과자 먹고 싶어’ 난 속으로만 외쳤다. 곧 은나네 가족을 실은 용달차는 쌍문동을 떠났다. 은나와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 했다. 매일 은나와 놀았던 나는 은나가 떠나자, 팔 한 짝이 떨어져 나간 듯 허전했다.  


내가 글을 쓰면서 엄마에게 ‘은나 이야기’를 하니, 엄마도 무척 반가워한다. 엄마는 그 때 은나 엄마가 미싱 일을 했었다고 한다. 나는 몰랐는데, 은나네 집에도 미싱이 있었다고 한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은나 엄마도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다들 어렵게 살아서 다른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 할 때다. 그 때 내가, 은나 엄마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자식들을 내팽개친 무책임한 엄마로 오해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의 생애 첫 친구 은나. 어느 덧 40 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은나는 지금 어디에서 잘 살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은나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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