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처음으로 기억하는 사회적 사건은 1979년에 일어났다.
내가 입학했던 8살, 동네 전체가 초상집처럼 느낀 최초의 기억,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을 그 부하가 총살한, 이 역대급 사건은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 때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총을 몇 방 쐈느니, 가슴과 머리에 맞았느니 하면서 수군거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얘기’를 하다가 걸리면 큰일 난다고 ‘쉬쉬’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순경이 동네를 다니며 ‘그 얘기’ 한 사람들은, 애들도 잡아간다는 것이다. 8살이던 내가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순경이 잡아간다는 것을 아주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어디론가 잡혀가서 집에서 가족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는 큰 형벌과 같은 것이므로.
나나, 은나, 세나, 보름이(자매), 동훈 오빠, 선녀(남매), 희순이, 희숙이(자매) 옥순이, 꽃순이, 남순이(자매), 혜숙이, 혜정이(자매), 혜연, 형만이, 혜영이(남매), 민정, 인영이(자매), 종희, 종철이, 종숙이(남매), 소영이(무남동녀)….
쌍문동에 이웃하며 살았던 이들의 이름이다. 친구도 있고, 언니들도 있고 동생들도 있다. 나에게 친언니 4명과 남동생, 사촌들, 그리고 이웃인 이들이 있어, 쌍문동 시절은 외롭지 않고 풍요로웠다.
내가 살았던 쌍문 1동 301번지는 한 지붕에 벽으로 칸을 막아서, 두 가구가 살았다. 바로 옆에 동훈 오빠네 가족이 살고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해 여름 방학, 집에 혼자 있는데, 어디선가 ‘으흑, 으흑’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낮의 적막을 깨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자세히 들어보니 사람의 울음소리였다. ‘누가 우는 거지?’ 그 소리는 점점 강도가 세졌고, 그칠 줄 몰랐다. 나중에는 흡사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로 들렸다.
‘왜 울기만 하는 거지?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될 텐데’
울음소리는 남자 목소리여서 옆집에 사는 동훈 오빠로 짐작했다.
며칠 후 우리 동네에 초상이 났다. 초상집은 우리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동훈 오빠네였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훈 오빠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비가 많이 쏟아지던 날,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기억에 동훈 오빠는 눈이 크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동훈 오빠 엄마가 몸부림을 치며 오열했던 것이 생각난다. 우리 엄마가 동훈 오빠 엄마를 달래주던 것도. 동훈 오빠 엄마는 일을 다녀서 늘 집에 없었다. 어떻게 치료 한번 못 받고, 고등학생이 혼자 집에서 고통을 삭이며 울기만 했을까.
나중에 들어보니 동훈 오빠가 어렸을 때 머리에 못이 찔리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못만 빼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못이 녹슨 것이었는데, 녹이 오랜 세월 동훈 오빠 머리에 남아있어서, 파상풍으로 죽었다고 한다. 쌍문동 시절에 처음 목격한 죽음이라 충격이 컸다. 요즘 같으면, 간단히 치료로 끝날 일인데, 1980년대 그 때는 병원에 쉽게 가는 시절이 아니었고, 병에 대해 무지하기도 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동훈 오빠는, 쌍문동 시절에 ‘죽음’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다.